최대 100만원의 보너스도, 1만원짜리 커피·제빵 상품권도, 편의점 5000원 모바일상품권도 모두 날아갔다. 내 돈 들여 한 명의 소비자라도 더 끌어모으겠다는 카드사의 노력도, 혜택을 비교하며 덤을 받는 소비자의 기쁨도 다 물 건너간 것이다.
시작은 한 고위 공직자의 말이었다. 다양한 재난지원금 신청 마케팅을 준비하던 카드사를 향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정부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지원금 신청을 유치하기 위한 지나친 마케팅 활동은 자제하라”고 말했다. 이에 10조원으로 추산되는 재난지원금 유치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던 카드사들은 부랴부랴 나갔던 공지문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소비자와 약속을 어길 수 없다며 준비한 이벤트를 강행하는 몇몇 카드사마저 장기 미사용 고객 같은 제한적인 범위의 마케팅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회사의 시스템까지 무상 제공하며, 내 돈을 쓰는 마케팅을 준비했건만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소비자들 역시 불만이다. 카드사 혜택을 비교하며 고르는 쇼핑의 맛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한푼이라도 더 써서 코로나19로 급랭된 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겠다는 정부 재난지원금 정책 의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관료 또는 정치인들의 시장 개입은 앞서 단말기유통법이나 도서정가제, 주류 판매장려금 지급 제한 등에서도 거듭됐던 일이다. 스마트폰과 맥주 판매상이 이윤 중 일부를 활용해 싼 가격과 ‘1+1’으로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것도, 책을 싸게 파는 것도, 공무원들과 정치인 선비들에게는 천박한 일인 모양이다. 체면과 명분을 중시여기며 사농공상의 서열을 강요하는 선비들이 21세기 선진 자본주의 시장에 다시 득세하는 기분이다.
문제는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초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남들은 기계와 도구를 발전시켜 생산성을 배가시키고, 활발한 무역으로 경제영토를 넓혀가던 때에 우리는 사농공상의 굴레에서 때에 찌든 흰 옷 몇 벌과 보릿고개와 초근목피라는 배고픔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조선 후기였다.
앞서 말한 카드 마케팅 규제와 단통법, 도서정가제, 주류 장려금 지급 제한 모두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에게 피해만 남았을 뿐이다. 남은 것은 규제에 성공했다는 정치인, 공무원들의 뿌듯함과 명분이 전부다.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한 전직 경제관료의 말이 아직도 정치권과 관가에서 회자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보면 권력을 휘두르는 목적이 민초, 민생을 벗아나면 안 된다. 카드사 마케팅이나 가로막고 상인들의 경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터진 사상최대 일자리·취업자 감소 같은 보다 큰 고난을 해결해내는 것이 진짜 선비정신이 살아있는 관료, 정치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