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지위(累卵之危)’.
우리 기업들이 마주한 작금의 경영위기는 딱 이렇게 규정된다. 최근의 경제상황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달걀을 쌓아놓은 듯 위태롭다. 코로나19로 촉발된 경기침체와 더불어 생산시설 셧다운, 서플라이 체인의 붕괴가 연쇄적으로 기업들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글로벌 각국이 국경을 차단하며 물류와 인력 이동마저 차단됐다.
지난 연말부터 온 힘을 다해 짜낸 기업들의 사업계획은 이미 무용지물이 됐다. 투자, 연구·개발(R&D)은 고사하고 당장의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공장 가동률을 줄이고 사업을 정리하며 인력을 감축하는 눈물의 고육책까지 등장하고 있다. 아직 1분기도 채 지나지도 않았지만 재계 관계자들의 입에선 “올 한 해 농사는 끝났다”는 자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위기의 돌파구를 찾기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기업과 기업인들을 흔드는 ‘손’들이 있다. 그 ‘손’들은 최근 잇달았던 기업들의 주주총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효성그룹 본사에서 열린 ㈜효성의 정기 주주총회. 이날 주총에 앞서 효성 본사 앞에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민변 경제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이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사장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효성 지분 10%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조 회장과 조 사장의 선임에 반대표를 던져야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이날 주총에서 효성 주주들은 70%가 넘는 찬성률로 두 사람의 연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취임 3년 만에 그룹 영업이익을 1조원대로 다시 올려놓고 시가배당률 6.0%의 주주친화경영 성과를 보여준 경영인들을 물러나라고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리 만무했다.
이 같은 모습은 한진칼 주총에서도 연출됐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은 27일 서울 소공동 한진빌딩에서 열린 한진칼 주총에 앞서 기업지배구조 안건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조원태 회장 등 총수일가가 한진칼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도 이날 조 회장은 찬성률 56.67%로 경영권을 지켰다. ‘남매의 난’국면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것으로 여겨졌던 국민연금이 조 회장 지지를 밝혔고, 한진그룹 노동조합과 전직 임원회까지 나서 “조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 전문경영진을 신뢰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조 회장 연임 반대를 외친 이들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기업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시장이고 주주다.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간 경쟁에서 리더십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명된 기업인은 가차 없이 내쳐지는 게 경영계 진리다. 굳이 밖에서 기업인을 흔들지 않아도 그 진리는 작동한다. 최근 경제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선 온갖 경영 변수에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상황판단이 필수적이다. 그 기반이 되는 것은 흔들림 없는 경영권과 그를 통한 기업의 안정이다. 현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이 최소한 갖춰야 할 것이 바로 안정이다. 외부에서 흔들지 않아도 기업들은 지금 충분히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