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모든 일정이 취소됐다. 매일 저녁 잡혀 있던 2, 3건의 약속이 사라졌다. 뜻하지 않게 ‘저녁 있는 삶’이 생겼지만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19 여파로 마치 나라가 마비된 느낌이다.
변호사들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법원의 재판과 검찰의 수사가 거의 중단되고, 의뢰인들과의 대면상담도 줄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모든 행사와 회의를 취소했다.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코로나19 소식은 암울하다.
하지만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느껴진다. 방역복을 입은 채 잠시 쪽잠을 자는 모습, 마스크에 장시간 눌려 콧잔등이 헐어버린 얼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감동적인 모습들이다. 코로나19의 암울함 속에서도 질병과 싸우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헌신이 등대처럼 밝게 빛나고 있다.
흔히 전문직 하면 변호사와 의사를 떠올린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우수한 문과학생들은 변호사, 이과는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에게 존경과 질시를 동시에 받는 직업인 변호사와 의사는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점이 많다.
첫째, 개인사업자이면서도 공익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의료법 제2조 2항 역시 ‘의료인은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다’고 돼 있다. 둘 다 국민을 위해 자신보다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직업이다.
둘째, 평소에는 눈에 크게 띄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고자 나선다.
의료진은 질병의 최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환자가 있으니 간다. 나의 일이라서 할 뿐”이라고 말하며 의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이번 코로나19의 국가적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변호사 역시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마스크 1만 장을 어렵게 마련해 대구지방변호사회에 보냈다.
그런데 대구지방변호사회는 더욱더 절실하고 소중하게 사용할 의료진을 위해 전달받은 마스크 전부를 대구시의사회에 기증했다. 이후 전국 모든 지방변호사회에서 대구로 성금과 마스크가 이어졌다.
재난에는 항상 법률문제가 따른다. 대한변협은 세월호,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사고 등 각종 재난에 법률 지원활동을 했다,
이번에도 코로나19대책 법률지원TF를 발족했다. 모든 회의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이 회의는 대면으로 진행됐다. 변호사들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환난상휼(患難相恤)의 마음으로 대한변협과 10대 로펌이 먼저 10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기부했다. 이어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 전 회원을 상대로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
셋째, 사회를 유지하는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법률이 있어서 질서 있게 돌아가고, 의료가 있어서 건강하게 유지된다. 모든 기능이 하나가 될 때 사회가 제대로 작동한다.
변협회장으로서 평소 회원들에게 “우리는 변호사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제 이 말을 전 국민에게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는 하나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