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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디지털 통상협상, 민관 협력으로 주도하자

2만명의 인공지능(AI) 엔지니어가 7억명의 고객에게 실시간 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잠든 사이 전기자동차에 내장된 소프트웨어(SW)가 무선으로 업데이트되고 수시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다.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가장 가까운 곳의 공유차량이 배차된다.

거대 IT기업 이야기가 아니다.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혁신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중국의 핑안(平安)보험, 미국 테슬라(Tesla), 동남아 그랩(Grab) 이야기다. 각종 규제로 데이터 활용과 디지털 기술 혁신에 목마른 우리 기업으로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우리에게도 동화를 현실로 바꿀 만한 제도적 기반이 생겼다. 빅데이터 활용을 가로막고 산업 간 디지털 융합을 저해한다고 해서 ‘개망신법’이라 불리던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가명 처리된 개인정보와 방대한 원본 데이터를 의료·금융·보험·유통 등의 분야에서 상업적으로 사용할 길이 열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핑안보험, 테슬라, 그랩 같은 혁신적인 사업모델이 국내에 등장하고 우리 디지털기업이 머지 않아 세계 시장을 누빌 것이란 기대가 크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디지털 서비스를 수출하기까지는 여전히 난관이 많다. 국내 규제는 완화됐지만 정작 해외에서 디지털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만리방화벽’이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의 온라인 콘텐츠 검열, 웹사이트 접속 차단, 데이터 해외 이전 금지 등으로 중국 기업과 우리 기업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베트남은 우리 기업에 데이터 서버를 자국 영토 내에 세우라고 강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일반 개인정보보호법(GDPR)’도 유럽 소비자에게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우리 게임업체에는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인도, 인도네시아, 남아공은 온라인으로 전송되는 외국 콘텐츠에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전 세계 청소년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한류 콘텐츠의 인기몰이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외국 기업에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디지털 무역장벽이 컴퓨터 악성코드처럼 전 세계로 퍼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국제 규범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유산인 국제통상 규범이 디지털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자 차원에서 디지털 통상 규범을 논의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자상거래 협상은 지난해부터 비로소 시작된 데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EU 간 대립이 지속되고 있어 최종 합의는 요원하다. 반면 디지털 무역 자유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부 개별 국가와 체결하는 FTA 특성상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디지털 통상 규범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자 규범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FTA로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 정부와 IT업계는 혼란스러운 디지털 통상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디지털 무역에 대한 새로운 국제 규범이 움트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규범 설정자로 나설 절호의 기회다. 디지털 통상 규범을 짜기 위한 다자·양자 협상에 적극 참여해 업계에 유리한 규범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관 협력, 특히 민간의 정책 수요를 정부가 통상 협상 어젠다에 적극 반영하는 상향식 정책 결정이 중요하다. 민간이 적극적으로 요구한 이슈는 협상장에서 우리 대표단의 칼과 방패가 된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건넨 무기를 장착하고 디지털 통상 협상의 무대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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