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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박준영 변호사 “잔혹범 변호, 비난 안돼”… 부실 변호 ‘가슴아파’
박 변호사 “밤샘 수사만으로도 가혹행위”
“소극적 변호 이뤄질 수밖에 없던 상황 아쉬워”
헤럴드경제는 11일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이번 화성 8차사건의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사진)를 만났다. [사진=김성우 기자]

[헤럴드경제=김성우 기자]‘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44) 변호사가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이하 8차 사건)의 변론을 맡게 됐다. 박 변호사는 수사 당시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모(검거 당시 22세) 씨와 만남을 갖는 등, 본격적인 재심 청구 준비에 들어갔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1일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박 변호사를 만났다. 박 변호사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윤 씨와 통화를 했다. 박 변호사는 그 통화 내용을 중심으로 윤 씨의 현재 입장을 설명해줬다. 인터뷰에는 박 변호사가 8차 사건을 보면서 느꼈던 수사당국의 강압수사·재판과정 전반에 대한 입장도 담겼다.

▶덩치 좋은 경찰관 ‘무도 유단자’ 소개하며 폭행= 윤 씨는 박 변호사와의 전화통화에서 검거 당시 수사당국으로부터 협박을 당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윤 씨가 검거된 날 윤 씨의 집을 찾아온 ‘덩치가 좋은’ 경찰은 스스로를 ‘무도 유단자’라고 소개했다. 충분히 위협적 언사였다.

윤씨가 체포된 후에는 가혹 수사가 이뤄졌다. 경찰은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윤 씨에게 쪼그려뛰기를 시켰고, 쪼그려 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발로 윤씨를 걷어찼다. 물도 주지 않았다. 결국 윤 씨는 경찰에 자신이 8차 사건의 범인이라고 진술했다. 박 변호사는 “윤 씨가 결정적으로 자백을 하게 된 계기는 ‘3일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물을 주지 않아서’였다”고 설명 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윤 씨의 판결문에서도 수사가 강압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보인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2심 판결문을 보면, 윤 씨가 자백을 한 시간이 오전 5시 40분께로 적혀있다”면서 “당시에는 밤샘조사가 관행이었을지 몰라도, 지금기준으로 봤을 때는 충분히 반인권적인 처사다. 가혹행위에 의한 허위자백이 있을 수 있다는 정황이 되기도 한다”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8차 사건의) 재판이 부실하게 진행된 점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윤 씨는 2심 재판에서 “경찰에 거짓으로 자백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당시 변호를 맡았던 국선 변호인은 윤 씨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했고 재판부도 윤 씨의 주장을 외면했다.

박 변호사는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크게 망가졌다. 부실한 변호가 그 중 한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면서 “사건을 맡을 때면,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법조인으로서 나 자신도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강력범죄 변호인에 대한 비판이 멈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윤 씨를 놓고서 언론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마’가 잡혔다고 보도했을 것”이라며 “당시 국선변호를 맡았던 변호인도 윤 씨를 변호하는 데 소극적인 입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모든사람이 비난했을 것이다. 지금의 고유정이나 이런 사건을 대하는 대중의 분노와 큰차이가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잔인한 살인범죄 사건을 변호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중들도 잔혹한 살인범죄를 변호한다는 것 자체를 놓고서 비난을 가해선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은?=8차 사건은 1980~90년대, 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유일하게 범인이 검거됐던 사건이다. 경찰은 8차 사건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모방범죄로 봤다. 범인으로는 당시 22세였던 농기구 수리공 윤 씨가 지목됐다. 경찰 수사를 받은 윤 씨는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윤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윤 씨는 이후 감형돼 20년간 징역형을 살고 2009년 석방됐다. 당시 경찰관들은 윤 씨를 검거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다.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도 내가 저지른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윤 씨의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해당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이후 윤 씨와 연락이 닿았다. 윤 씨는 박 변호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무죄 판결을 받게 되면, 8차 사건으로 상처를 입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겠냐”라면서 ‘돈’이 아니라 ‘명예’ 때문에 수임을 맡기게 됐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앞서 2차, 7차 사건에서 범인으로 몰렸던 이들을 변호했던 김칠준(60·법무법인 다산)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 소속 다른 변호사 한 명과 함께 재심을 준비한다.

박 변호사는 배우 정우 주연의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박 변호사는 앞서 유죄판결이 났던 사건들의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냈다. 그가 수임한 사건으로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이 유명하다.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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