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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수사 60년] 체계도, 사람도, 예산도 없다… ‘CSI 코리아’
국과수 법유전과 실험실 모습 [국과수 제공]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사건발생 33년만에 특정됐다. DNA 감식 경험 축적 등 과학수사가 발전하면서 수십년전의 흔적에서 범인에 대한 정보를 가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6년 4월로 만료됐다. 한국의 과학수사 시스템이 13년만 더 빨리 갖춰졌더라면, 어쩌면 범인을 잡아 처벌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그늘 같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규명에 많은 국민들이 기뻐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의 과학수사는 지금도 ‘찬밥’ 신세라는 점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의관 정원은 매년 정원 미달이다. 국내 과학수사 전반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는 전무하다. 지문이나 DNA 등을 제외하면 수사 단계에서 간접 증거로 활용될 뿐 법정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과학수사 기법도 적지 않다. 연구개발(R&D) 예산은 5년째 제자리 걸음이고,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DNA법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당장 내년부터는 DNA를 활용한 수사 자체도 어렵게 됐다.

▶“기준이 없다…韓과학수사 통합·관리체계 짜야”= 한국에서는 경찰, 국과수, 검찰, 군 등 여러 기관에서 과학수사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과학수사의 기준이나 방법이 기관마다 다르다. 이를 제도적으로 체계화하는 ‘과학수사기본법’ 등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변사자의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수사지휘를 하는 검사다. 검사가 범죄와의 연관 가능성을 따져 해부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이 판단이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다. 검사가 현장에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의학적 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법제화된 부검 기준도 없다. 법의관이 의견을 제시하지만, 검사가 법의관의 의견을 들을 의무는 없다는 의미다.

국과수 관계자는 “경찰뿐 아니라 수사를 지휘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검사, 공판을 진행하는 판사, 더 나아가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들이 과학수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며 “사법연수원이나 법학전문대학원 과정에 과학수사 교육과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할 일은 쌓였는데…법의관 정원은 ‘공석’= 턱없이 부족한 인력도 ‘CSI 코리아’의 꿈을 발목잡고 있다. 국과수 법의관 정원은 55명이지만 현재 인원은 32명에 불과하다. 결원율이 무려 41.8%다. 이렇다 보니 국내 법의관 한 명이 1년에 부검하는 시신만 200구 정도다. 미국의 2배 수준이다.

국과수가 손이 달리다보니 일선에 있는 경찰들이 사건을 그냥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일선 경찰들의 최후까지 가보겠다는 의지가 꺾이는 것이다.

인력과 장비부족 문제의 원인은 책임기관의 문제다.

현재 국과수는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경찰청과는 별개 조직이다. 하지만 “국과수 업무가 행안부 실적과 크게 연관되는 업무가 아니다 보니 예산을 편성받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 국과수 측의 하소연이다. 국과수가 사용하는 일부 시약과 장비 위탁 비용은 오히려 경찰청 R&D 예산에 묶여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국은 과학수사 60년 역사가 있지만 관련 축적된 DB가 상당히 적고 믿을 만한 법의학 전문가층이 매우 얇다. 과학수사 인프라도 미국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라며 “과학수사 개념을 명확하게 확립하고 중장기 R&D 계획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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