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정서·친노동 기조 여전
국내기업 96% “유턴계획 없어”
관련법 개정안 국회 문턱 못넘어
미국이 과감한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으로 성과를 내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의 ‘유턴기업지원책’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경쟁국 수준의 과감한 세제 개편과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개혁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미국은 리쇼어링 관련 통합관리기관이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도 빠르고 활발한 유턴기업 지원에 걸림돌로 지적됐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팀장은 “유턴기업 성과 저조, 해외투자금액 급증, 외국인직접투자 감소를 모두 관통하는 하나의 이유는 국내 기업 경영환경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 등의 체질 변화를 이뤄야 유턴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국내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기업 96% “유턴 안한다” 왜?= 산업통상자원부가 유턴기업지원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기업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작년 11월 해외사업장을 가진 기업 150개를 설문한 결과 96%가 “국내 유턴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국내 유턴을 고려하는 기업은 단 2곳(1.3%)에 불과했다.
국내 유턴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는 해외시장 확대(77.1%), 국내 고임금 부담(16.7%), 국내 노동시장 경직성(4.2%) 순으로 조사됐다.
유턴기업 확대를 위한 필요 과제로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29.4%),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규제완화(27.8%), 비용지원 추가확대(14.7%), 법인세 감면기간 확대(14.2%), 수도권 유턴기업에도 인센티브 허용(7.2%) 등이 우선순위에 꼽혔다.
유턴기업 인정범위 확대 등을 담은 유턴법 개정안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유턴기업종합지원대책을 온전히 시행하기 위해서는 유턴법 개정안이 필요하지만 ▷국내 복귀 기업 입지 지원을 위해 국유 또는 공유재산을 수의계약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안 ▷생산제품 범위를 세분류(4단위)에서 소분류(3단위)로 완화해 기업 부담을 줄이는 안 ▷국내 복귀 기업에 대한 인정 범위를 ‘제조업’에서 ‘서비스업’까지 확대하는 안 등이 아직 법안 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엄치성 실장은 “기업 유턴활동 촉진을 위한 유턴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와 미국의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와 같은 유턴기업 종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유럽·대만은 기업유치전 사활= 한국의 유턴지원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자국 보호주의’를 내세운 미국 뿐 아니라 최근 한국과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일본도 해외로 떠난 기업을 국내로 되돌리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경기부양정책인 ‘아베노믹스’에 기반해 국가전략특구를 지정, 신산업 규제를 완화하고 법인세를 30%에서 23.4%로 낮췄다.
일본 기업들은 이에 화답해 혼다자동차의 경우 베트남과 홍콩에 있는 오토바이 생산기지 일부를 일본으로 옮겼고, 도쿄 인근에 300억엔 투자를 단행하는 등 30년 만에 일본내 공장을 증설했다. 또 파나소닉과 NEC, 소니, 다이킨공업도 중국 공장을 일본으로 이전시켰다.
독일은 규제혁파에 집중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스마트 팩토리와 미래형 연구개발 보조금 지원을 골자로 하는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발표하고 규제 하나를 추가하면 하나를 없애는 ‘One in, One out’을 도입했다. 법인세율은 26.4%에서 15.8%로 완화했다.
독일 유명 스포츠웨어 업체 아디다스가 23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와 지난 2016년부터 안스바흐 공장에서 신발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정책의 대표 성공사례로 꼽힌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이 돌아오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여전히 국내 기업환경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해외에선 정부가 발벗고 나서 법인세 인하, 특구 지정 등 기업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데 굳이 한국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한국의 기업환경이 좋아지지 않으면 기업들은 더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