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GATT 조문 중 3개 활용 가능
화이트 국가 제외 행위 자체도 문제…실제 피해 규모도 입증해야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일본의 수출 규제를 두고 한일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무대서 치열한 법리다툼을 벌인다면 한국 측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2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이 실제로 내달 중 한국을 우방국 명단인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고, 반도체 소재를 포함해 1100여개 품목의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WTO 제소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제소에는 구체적인 피해액 추산 작업이 필요해 실행에 옮겨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WTO 분쟁해결 절차에 들어간다면 가장 먼저 입증 책임은 제소국인 한국 측에 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조문 중 3개를 문제 삼을 수 있다. 먼저 수출 물량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11조 1항을 활용할 수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대한국 수출 규모가 줄었다는 자료가 필요하다.
최혜국 대우 의무를 명시한 GATT 1조 1항도 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기존보다 더 엄격한 수출 규제가 돼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일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통상 관련 제도·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10조3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실제로 한국이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위법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라며 "일본이 자의적으로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면 일관·합리성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 측은 수출관리상의 재검토로, 수출 규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전망이다. 아울러 수출 제한 조치라고 하더라도 국가 안보를 위해 이뤄진 조치로 문제없다고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GATT 20조 제(d)항이나 21조에 명시된 예외 사유이다.
노주희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일본은 GATT 원칙에 어긋나지 않았고, 원칙에 벗어났더라도 안보상 예외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하지만 현재까지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검증받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등 수출 규제의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 상황에선 한국의 승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승소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여전히 변수는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정기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국제분쟁에서 완전한 압승을 경우는 많지 않다"며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해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행위가 통상 협정을 위반한 것인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승소하더라도 배상 책임을 일본에 물을 수 없다. 잘못된 일본의 조치를 바로 잡을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일본의 조치를 '경제 보복'이라고 규정한 한국 정부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 보복관세를 부과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장 일본산 품목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며 "하지만 일본의 조치에 따라 한국의 피해 규모가 구체적으로 추산되고, WTO에서도 이를 인정받는다면 피해받은 만큼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