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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가 스펙’인 세상… “차라리 스펙 보고 뽑아주세요”
-객관적 기준 있어도 인사청탁 빈번한데
-“채용비리 적발도 어려울 것” 우려
-탈스펙커녕 입시시험으로 변질된 NCS시험


[사진=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이럴 거면 차라리 토익, 자격증 같은 정직한 스펙이 더 반영됐으면 좋겠어요”

면접관들이 구직자들의 학력 등 신상 정보를 가린 채 사람을 뽑는 ‘블라인드 채용’ 도입이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최근 유력 정치인들의 자녀들이 취업청탁 등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입사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차라리 스펙을 보고 뽑으라’는 구직자들의 호소가 이어진다. ‘부모가 스펙’이 되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객관적인 토익점수나 학력 등을 보고 뽑는 것이 더 공정한 면접 심사가 되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2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7월 모든 공공 기관들은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의무화했다. 채용 과정에서 학력ㆍ출신 지역ㆍ가족 관계ㆍ성별 등을 가리고 실력 위주로 뽑자는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민간 기업으로 확산되면서 서류 심사 때 성적, 토익, 자격증 등을 보지 않는 기업들도 현저히 늘었다.

그러나 최근 연이어 터지는 채용비리 소식에 취업준비생들은 객관성이 떨어지는 블라인드 채용 시스템이 오히려 채용비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결과에 따르면 총 946개 기관에서 4788건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 관계자 자녀를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이후 면접 최고점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국광해관리공단)하거나, 가점대상자에게 가점을 부여하지 않아 탈락시키고 대신 지역 유력인사 자녀를 채용(근로복지공단)하는 등 종류도 다양했다. 사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금융권 채용비리에 이어 국회의원들의 채용비리 의혹까지 곳곳에서 터지자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채용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대학생 4학년 하모(27) 씨는 “최근 강원랜드 채용비리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것을 보고 좌절했다”며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까지 나왔는데도 무죄인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채용비리가 암암리에 이뤄질지 상상조차 안 간다”고 말했다.

특히 블라인드 채용이 가진 불투명성이 채용비리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토익, 학점 등 점수 스펙을 볼 때도 기준 미달인 사람을 인사청탁으로 합격시켰는데, 점수조차 반영하지 않는다면 면접관이 청탁을 받았을 때 더욱 쉽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서울 서대문구의 취업준비생 최윤지(29) 씨는 “블라인드 채용은 인턴, 해외경험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경험이나 포장하기 나름인 직무연관성을 본다”며 “인사청탁자들에게는 객관적 스펙을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로만 조심하면 들키지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블라인드 채용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탈스펙 채용을 한다면서 면접과정에서 동아리 이름을 말해보라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학교, 출신지역 등을 묻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취업준비생 유모(28) 씨는 “사실 면접볼 때 학교 근처인 ○○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고 말하거나, 유명 동아리 소속이라고 밝히는 등 학교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한 중견기업 채용 담당자는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고 누구나 납득할만한 채점 기준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결국 경험이라는 것이 어떻게 어필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오히려 취업준비 시간과 비용을 늘려놓았다는 불만도 나온다.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대외활동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각종 동아리, 학회, 봉사활동을 해야하는데 이는 거꾸로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우려다. 블라인드 채용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직무시험(NCS)은 이미 입시시험으로 변질됐다. 경기도 광주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안모(29) 씨는 “대학을 막 졸업한 학생에게 기업의 직무연관성을 따지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인터넷 동영상 강의료만 해도 한달에 수십만원”이라고 토로했다.

취업준비생의 우려와는 반대로 기업들의 블라인드 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조사에 참여한 162개사를 대상으로 ‘2019년 상반기 대졸 신입공채 계획’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기업 중 블라인드 채용 전형을 도입한 기업이 작년 하반기 33.7%보다 30%p 늘어난 63.7%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류전형과 면접 모두 블라인드 채용 전형을 실시하는 기업이 46.2%였고, 부분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곳은 27.7%였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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