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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52시간 1년①] 대기업-중소기업 ‘저녁 양극화’ 더 심해졌다
-대기업ㆍ중소기업 직장인 ‘극과 극’ 저녁
-“임금 보전’ 안 되면 저녁 외식마저 줄여야할 판” 하소연

[사진=123RF]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 대기업에 기계 부속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직원 조성일(34ㆍ가명) 씨는 지난 5월 저녁 퇴근무렵 대기업 직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기업 직원의 말은 ‘업무처리를 부탁한다’였지만 사실상은 업무지시였다. 야근이 불가피했다. 해당 대기업은 이미 퇴근한 시각이다. 조 씨는 “대기업은 문닫고 퇴근했지만 하청업체들은 저녁에도 전화로 오더를 받는다. 야근이 일상”이라고 하소연했다. 조씨의 더 큰 걱정은 “중소기업까지 주 52시간제가 적용될 2020년”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주 68시간을 근무하면서 야근ㆍ특근 수당으로 월급을 보전했지만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면 월급은 40만원 가량이나 줄어든다.

#. 대기업 직원 백중기(31ㆍ가명) 씨는 주52시간 도입 후 퇴근 후 취미로 프리다이빙 자격증에 도전했다. 강제 정시퇴근이 일상화된 덕분이다. 한달짜리 중급 프리다이버 코스의 수강료는 월 50만원 정도다. 업무 시간 중 처리하지 못한 잔업은 하청업체에 전화해 처리했다. B 씨는 “근로시간을 지키기 위해 그날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퇴근해야 하는 날도 있다”며 “회사는 닫아도 협력사는 열려있어 전화로 업무를 부탁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만 1년 동안 대기업 직장인의 삶은 달라졌다. 제도 적용을 받는 대기업 직원들은 ‘저녁있는 삶’을 누리게 됐다는 사례가 속속 늘어나고 있지만, 제도 시행 전인 중소ㆍ중견기업 직장인들의 삶은 오히려 각박해졌다는 불평들이 쏟아진다.

경기도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을 운영하는 조모(56) 씨는 “직원들을 52시간만 일하게 하면서 지급하던 월급이 30~40만원까지 줄었다. 월급이 줄어들자 그만둔다고 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는데 손 쓸 도리가 없다. 구인공고를 올려도 외국인 직원들만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직원들의 삶의 질 양극화는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3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하는 방식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도입 후 정시 퇴근이 쉬워졌다는 응답은 대기업에 집중됐다. ‘정시 퇴근 분위기가 정착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매출 1100억 이상 구간에선 63.6%, 350억~1100억원 구간에선 33.3%, 120억~350억원 구간에선 21.4%, 120억원 미만 구간에선 0%로 나타났다.

주 52시간제 적용을 앞둔 중견ㆍ중소기업 재직자들은 임금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중소기업 재직 중인 10년차 직장인 서모(36) 씨는 “쓸 돈이 없는데 시간만 남는다고 삶이 질이 올라가겠냐”며 “수당 등이 빠지면 월급으로 기껏해야 250만원을 받는다. 전세 대출금 상환액이 100만원 가까이 나가는데, 네 식구 생활비도 안 남는다”고 말했다. 한국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2019년 기준 생계급여기준 및 최저보장수준은 4인 가족 기준으로 138만 4061원이다.

중소기업 재직자들은 제도의 수혜는 대기업에, 부작용은 중소기업에 전가되는 양극화에 쓴웃음을 지었다. 중소기업 재직자 이모(29) 씨는 “직장인들에게 여가시간이 생기면 얼만큼 벌어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는지 그 차이가 더 확연해질 것”이라며 “누군가는 헬스나 골프 같은 취미에 도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에선 월급이 줄어 외식조차 줄이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열린 고용노동부 장관초청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는 계도기간을 부여할 것을 요청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의 읍소가 이어졌다. 중소기업보다 근로여건이 좋았던 대기업도 두 차례에 걸쳐 총 9개월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으니 중소기업은 최소 1년의 계도기간을 달라는 주장이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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