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인리스 내수시장 ‘공급과잉 상태’…청산강철 진출시 국내업체 타격 - 철강업계 “청산강철 직접 고용창출 500명…국내 업체 5000명 실직할 것” - 포스코도 전체 매출 22~25%가 스테인리스 차지…피해 불가피 - 지자체의 제철소 고로 조업정지 처분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원자재 가격 인상, 철강수요 산업 불황 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철강업계가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잇따른 행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부산광역시가 중국 스테인리스 제조업체의 국내 투자를 승인할 것이란 계획을 밝히며 자칫 철강업계에 대량 해고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스테인리스 냉연제품 시장수요는 103만톤이다.
전체 스테인리스 공장의 생산 능력은 189만톤으로 이미 공급 과잉 수준이다. 수입품도 시장의 35%를 차지하며 공장 가동률은 60%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 스테인리스 제조사인 중국 청산강철이 부산시에 1억2000만달러(1400억원) 규모의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
국내 스테인리스 강철 업체인 길산파이프와 50대 50 투자로 합작 법인을 설립해 올해 하반기 연간 60만톤의 스테인리스 냉연강판 공장을 착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수시장 규모의 57% 가량을 차지하는 양으로, 청산강철은 일단 60만톤 가운데 18만톤은 내수 시장용, 나머지 42만톤은 수출용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부산시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청산강철의 투자로 지역에 1만명 이상의 직ㆍ간접 고용 효과가 유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철강업계와 포항시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미 국내 스테인리스 시장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청산강철 합작회사가 연간 생산량의 3분의 1인 18만톤을 낮은 가격에 내놓게 되면 국내 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부산시에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신규 투자 유치에 따른 고용창출보다 기존 국내 동종업계 가동 중단에 따른 대규모 실직 타격이 더 클 것이란 얘기다.
실제 청산강철의 직접고용창출 인원이 500명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존 국내 동종업계 고용인원 수는 이보다 10배나 많은 5000명 수준이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이미 청산강철의 합작사인 길산파이프에서 생산하는 구조관이 내수시장의 5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번 투자로 구조관 생산량을 늘리려 하고 있다”며 “설비 확장 시 나머지 중소업체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 부산시에 관련 탄원서를 제출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포스코의 연간 스테인리스 제품 생산량은 200만톤으로, 전체 매출의 22~25% 가량을 차지한다. 수출용을 포함한다 해도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특히 미국, 유럽 등이 한국을 중국의 ‘우회 수출처’로 보고 무역 제재를 강화한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실제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의 국제 무역 규제로 수출길이 막힌 청산강철이 한국에서 중국, 인도네시아산 소재를 가공한 냉연제품을 한국산으로 둔갑해 수출할 시 국제 무역제재가 한국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청산강철이 국내에 들어오면 국내 스테인리스 시장은 물론 철강산업 자체에 큰 타격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라며 “부산시가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고 국내 철강산업을 쑥대밭으로 만들려 한다”고 지적했다.
철강산업을 고려하지 않은 지자체의 행보는 이 뿐만이 아니다. 고로 수리 시 폭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브리드(Bleeder, 압력밸브)를 ‘오염물질 배출 장치’로 보고 일부 지자체가 고로사에 10일간의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전 세계적으로 브리더 개방 외에 고로를 유지ㆍ보수할 방법이 없어 사실상의 제철소 운영 중단 처분이지만, 지자체에선 “조업정지 처분은 당연하고 적절하다”고 철회 의사가 없음을 시사해 철강업체와의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