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30일 개봉을 앞두고 28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한국에서 첫 공개됐다. ‘기생충’은 현대사회의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과장한 블랙코미디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기묘하게 얽히는 ‘가족희비극’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밝힐 수 없다. 봉준호 감독도 영화를 소개하는 리플릿에 “기사를 쓸 때 스토리 전개를 최대한 감춰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기생충’이 오로지 반전에 매달리는 영화는 아니지만, 스토리의 크고작은 고비들마다 관객들이 때론 숨죽이며, 때론 놀라며, 매 순간의 생생한 감정들과 함께 영화 속으로 빠져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봉준호 감독은 94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재학시절 단편영화 ‘지리멸렬’을 만들어 상류 계층의 권위를 마음껏 비판하고 조롱했다. ‘기생충’은 25년전에 찍은 ‘지리멸렬’과 그 정신이 닿아있다.

봉준호 감독은 “‘지리멸렬’은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로 주인공인 사회고위층들의 기행이 독특하게 다뤄졌다”면서 “‘기생충’에서는 굳이 빈자와 부자의 양극화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모습을 다뤄보고 싶었다. ‘기생충’은 사회경제적으로 부자와 빈자를 학술적으로 분석하는 영화가 아니다. 부자와 빈자라는 사람보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에 대한 것을 건드리는 영화다. 그 예의를 어느 정도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이냐, ‘공생’ ‘상생’이냐가 갈라진다고 생각한다. 풍부하게 희노애락을 가진 배우들를 통해 이런 점들이 투영됐다”고 말했다.

영화에 출연한 송강호는 “장르적 특성을 갖추면서도 변주돼 장르 혼합같은 낯섦을 관객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한다”면서 “영화적으로 참신한 진행에 대한 어려움을 동료들 덕분에 상쇄시킨 것 같고, 배우들끼리 ‘가족 앙상블’을 통해 잘 진행된 것 같다”고 전했다.

송강호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돋보이는 연기를 해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의 분량이 더 많다. 최우식의 연기에서는 잘 되기를 바라지만 녹녹치 않는 젊은이들의 삶의 불안과 두려움이 잘 드러난다. 가정교사로 들어간 그는 박사장 딸과 입맞춤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정도다.

전원백수인 기택네 딸 기정(박소담),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과 박사장(이선균), 잘 나가는 IT기업 박사장의 아내인 연교(조여정) 등 등장인물들의 분량이 거의 비슷한 정도로 배우들이 골고루 활약한다.

‘기생충’의 출발점은 가족이다. 삶의 기본을 이루는 단위로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소재다. ‘설국열차’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칸으로 나눠진 수평구조를 SF로 보여주었다. ‘기생충’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가족이 기구한 운명으로 함께 엮인다. 이를 위해 지하와 지상을 이어주는 ‘계단’과 지하이지만 지상으로 믿고싶어지는 ‘반지하’라는 소재가 잘 활용된다.

두 가족의 대비를 ‘저택’과 ‘반지하’로 그려내듯 ‘선’과 ‘냄새’도 봉 감독이 계급 갈등을 이야기하기 위해 포착한 소재다. 가히 기발하다. 글로벌 IT 기업의 박 사장(이선균)은 젠틀하고 친절하지만 ‘선’을 넘어오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대사인 “매사에 선을 잘 지켜. 내가 선을 넘는 사람들 제일 싫어하는데...”는 봉 감독이 비틀고 싶은 대상인지도 모른다.

봉 감독은 “사람들이 웬만해서는 냄새에 대해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말하다가는 무례할 수 있다”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는 동선이 달라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여기서는 양 가족이 같은 집에 들어가므로 냄새가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가 된다”고 설명했다.

‘기생충’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블랙코미디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금세 엔딩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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