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나무권리선언 [고양시 제공] |
[헤럴드경제(고양)=박준환 기자]식목(植木)철을 맞아 고양시(시장 이재준)가 의미깊은 행보에 나섰다.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나무의 권리를 선언한 것이다. 권리(權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나 힘’이다.
그럼 나무(木)가 권리를 누리거나, 나무에 권리를 부여하는 게 가능할까? 아무래도 주체, 자유, 타인, 주장, 요구, 자격, 힘 등과 관련지어보면 모든 게 걸리고 께름칙하다.
그런데 고양시는 최근 나무 권리와 관련한 일련의 거사(巨事)를 진행했다. 지난달 28일 시는 호수공원에서 나무의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나무권리선언’선포 의식(儀式)을 거창하게 개최했다.
‘사람과 나무는 벗이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서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고양 나무권리선언문’을 선포했다.
선포식에는 고양시민, 공공조경가, 자원봉사자, 새내기공무원 등 200여 명이 함께 한 가운데 이재준 고양시장의 전문 낭독을 시작으로 7명의 시민대표가 나무 하나 하나의 소중한 의미를 담은 조문을 선언했다.
이에 이틀앞서 이재필 푸른도시사업소장은 브리핑을 통해 ‘전국 최초! 나무권리선언’ 선포식을 예고까지 했다.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고양 나무권리선언문’은 ▷나무는 한 생명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태어난다 ▷나무는 오랫동안 살아온 곳에 머무를 주거권이 있다 ▷나무는 고유한 특성과 성장 방식을 존중받아야 한다 ▷ 숲은 나무가 모여 만든 가장 고귀한 공동체이며 생명의 모태다 ▷나무는 인위적인 위협이나 과도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람과 나무는 벗이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무의 권리는 제도로 보호받아야 한다 등 ‘인권’에 견줘 전혀 손색없는 사항들을 담고 있다.
이에 근거해 고양시는 가로수의 무분별한 가지치기를 제한함과 동시에 30년 이상 된 나무의 벌목을 원칙적으로 금지키로 했다.
시는 나무권리선언 선포를 공공수목관리에 대한 기본 이념을 바로 세워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생태ㆍ환경 도시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시발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나무권리선언문은 공(功)도 많이 들이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민선7기 시작과 함께 푸른도시사업소가 시민, 관련분야 전문가, 환경단체 등에서 제안한 의견을 수렴하고 자문해 완성했다.
나무의 일반적인 가치와 쓰임을 넘어 우리와 같은 한 생명으로서의 존엄성과 미래의 동반자임을 확인하고 약속하는 시대적 흐름을 적절하게 담고 있기도 하다.
요 며칠은 잠잠했지만 미세먼지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떨던 때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국가적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
산림청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시숲 1만㎡는 연간 168㎏의 대기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나무는 자연공동체가 맺은 상생의 약속에 오랫동안 충실해 왔다. 뿌리로는 옥토를, 잎으로는 맑은 공기와 구름을, 열매로는 식량을 빚어내고 그 자신마저 온전히 목재로 베풀었다. 사람은 생존에 허용된 범위를 넘어 나무를 착취해 왔다. 뜨거워진 대지와 먼지로 가득한 대기는 나무의 마지막 호소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무의 권리일지라도 인권과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비록 나무의 권리를 선언한다고 해서 나무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성’은 분명 있어 보인다.
105만 고양시민들이 나무의 권리를 지켜나갈 것을 널리 선포함으로써 행복에 겨운 고양시의 나무들은 뭇 나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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