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과세제도 한계 개선 움직임…‘구글세’ 도입 공감대로 이어져
탄소세ㆍ비만세 등 사회 문제 해결용 도구로 세제 활용
과세 형평성ㆍ기준 논란 여전…정부 설득 부족
지난 2017년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로봇세’ 도입 주장 이후 로봇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세수입을 실업자 재교육에 활용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과세의 근본적인 목적은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고 이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세원도, 사회 문제도 달라졌고, 이에 따라 세제도 바뀌어왔다.
일례로 중세 유럽 시대에는 창문과 난로의 개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 ‘창문세’, ‘난로세’ 등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창문의 개수=부(富)’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최근 부상한 ‘구글세’와 ‘로봇세’ 논의 역시 시대 변화에 따른 각국의 대처법을 보여준다. 디지털 경제의 확산, 자동화 도입 확대라는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롭게 발생하는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과세제도를 전면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과세 기준ㆍ형평성의 모호성을 지적하는 이해 당사자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새로운 과세처 찾아나선 정부들 =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경제의 확대와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는 오늘날 구글세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 본사나 공장, 물류창고 등 핵심 사업장의 위치와 무관하게 전세계에서 ‘국경 없는 매출’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 여전히 등록된 사업장을 기준으로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제도로 인해 공정한 과세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공감대가 일면서다.
실제 기업의 조세 회피 행위는 국가의 재정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경우 조세회피로 한 해 동안 2000억 달러의 세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저소득 국가들은 더 높은 경제 성장을 달성하고, 빈곤을 줄이며, UN의 2030 지속가능 발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움이 될 수입을 빼앗기고 있다”고 밝혔다.
오늘날 가장 적극적으로 구글세 도입에 나서고 있는 것은 유럽이다.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등 미국을 본거지로 하는 거대 IT 공룡들의 탈세 사실이 거듭 문제가 되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3월 IT 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세 신설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디지털세 도입은 일부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불발됐고, 프랑스, 영국 등 일부 나라들은 자체적으로 IT 기업에게 매출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각자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OECD와 IMF 역시 ‘세제의 공정성 회복’을 목표로 기업이 매출 발생지에 세금을 내는 법인세법 개혁에 힘을 보태는 분위기다.
구글세와 마찬가지로 ‘로봇세’ 논의 역시 비즈니스의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결과물이다. 로봇세에는 산업이 노동집약적 형태에서 점차 자동화로 바뀌면서 임금 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기게 되고, 결국 소득세와 급여세를 통한 국가의 재정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과세 당국의 고민이 녹아있다.
2년 전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들은 미국 내 경제활동의 51%를 차지하며, 이를 임금으로 따지면 연간 2조 700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즉,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인해 줄어든 재정수입을 ‘로봇’에 대한 과세를 통해 충당하고, 동시에 이 세금을 실업자 재교육에 활용하겠다는 것이 로봇세의 골자다.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 확산으로 현존하는 법인세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각국 정부와 국제 기구는 IT 기업을 겨냥한 ‘구글세’ 논의를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AP] |
▶新 과세 제도, 사회 문제 해결의 해법? = 국가는 세수 확보뿐만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에도 과세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도한 정크푸드 섭취로 성인병 발생 위험과 비만율이 증가하자 지난 2011년 덴마크는 포화지방 1㎏당 16크로네의 세금을 부과하는 비만세(Fat Tax)를 신설했다. 비만세는 식품업계의 반발로 1년 만에 폐지됐지만,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는 정크푸드 섭취를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국가들은 설탕세, 포장식품세, 탄산음료세 등 각종 ‘정크푸드세’를 만들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크푸드세가 당초 목적에 따라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는 설탕세가 도입되기 전과 후 음료 습관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세금 도입 이후 매일 설탕 음료를 섭취한다고 답하는 비율이 40% 낮아졌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탄산음료 한 캔 당 1%의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주요 청량음료 기업들이 설탕 함량을 줄이거나 용량 자체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재 활발이 논의되고 있는 ‘탄소세’ 이전에 유럽국가들이 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각종 세제들 역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지난 1992년 질소산화물에 대한 세금을 도입, 이후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30~40%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세금 인상을 통한 탄소 배출 감축 효과도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는 미국의 경우 2020년부터 탄소 배출 1t당 세금 50달러를 매기고, 매년 2%씩 인상할 경우 2025년이면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최대 46%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세 형평성ㆍ기준 여전히 모호” = 세금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만능열쇠’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가령, 식품업계는 정크푸드세가 비만 방지에 효과가 없고 오히려 저소득층의 부담만 늘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헝가리의 경우 정크푸드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포장 식품세가 국민의 식습관 개선에는 큰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 문제의 해법으로 부상한 ‘탄소세’는 실효성과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등 탄소세 강화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는 탄소세의 부작용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시민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 후 부자 감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정작 유류세 인상으로 서민의 부담은 가중시키려고 한다고 반발했다. 자동차 사용률이 높은 농촌 지역과 도시 지역 간의 형평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사설을 통해 “기후변화가 일반 주민들의 생활비를 인상하고 경제를 저해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아직 설득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로봇세’는 세금 부과 대상인 ‘로봇’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한 합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단순히 기계에 모두 세금이 적용될 수 있는지, 혹은 최근 개발 붐이 일고 있는 인공지능 역시 세금부과 대상인지에 대해서도 이해당사자 간의 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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