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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 불 나도 이상할게 없어”…여전히 두려운 ‘달방’사람들
종로 여관화재 참변 1년…
비상구 막혀있고 비상벨은 없어
소화기 사용방법도 몰라
곳곳에 화재위험 노출 불안


종로 3가 인근 건물 사이 골목길. 전선이 뒤엉켜 있는 모습. 종로 여관화재 참변이 일어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재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지난해 1월 20일 새벽, 서울 종로 서울장 여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유모(53) 씨가 술 먹고 홧김에 지른 불에 7명이 목숨을 잃었고 3명이 크게 다쳤다. 서울장 여관은 1989년에 지어진 낡디 낡은 여관이었다. 사상자들은 모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보증금이 없어 하루 1만원으로 달방생활을 하던 일용직 노동자, 서울구경 온 세모녀 등 피해자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가난해서 죽은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2일 다시 종로5가 뒷골목을 찾았다. 달라진 건 많지 않았다. 화재에 취약한 노후된 건물, 바닥에 버려진 연화성 물질들,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는 전선들. 곳곳에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작년 화재가 발생한 서울장 여관에서 5분거리도 안 되는 곳에 위치한 한 여관 앞. 입구 전봇대에는 ‘장기방’이라는 종이가 붙여있었다. ‘달방’이었다. 달방은 보증금이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 허름한 여관에서 선불로 월 40만원 정도를 내고 일정기간 머무는 장기투숙을 말한다. 20년도 더 된 여관에 스프링클러가 있을 리 없었다. 건물 입구에 소화기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비상구’ 역시 세탁기, 가방, 상자, 식기류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화재시 대형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근처 골목도 화재에 취약한 건 마찬가지였다. 노후화된 건물이 많은 이곳엔 2~3m마다 벽에 ‘금연구역’이라는 안내판이 붙여있었다. 하지만 행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웠고 바닥에 버렸다. 근처엔 불에 타기 쉬운 종이박스, 스티로폼, 비닐봉투 등이 담배꽁초와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LPG 가스 등 인화성 물질도 보였다. 전봇대에 마구 엉켜 튀어나와 있는 전선 역시 위험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했다. 지난해 11월 9일에도 종로고시원에서 화재가 나 7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인근 종로3가 쪽방촌 사람들은 “언제 화재가 발생해도 이상할 게 없는 동네”라고 했다. 마을 주민 이모(65) 씨는 “24만원 쪽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방시설은 ‘사치’”라며 “휴대용 가스버너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밥 짓는 냄새가 날 때마다 불안하다”고 했다.

종로 쪽방촌은 ‘화재경계지구’로 지정돼 있다. 화재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서울장 여관 화재가 발생하기 전에도 쪽방촌에서 화재가 나 1명이 목숨을 잃었다. 반복된 화재에 구청에선 집집마다 빨간 소화기를 나눠주고 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쪽방촌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은 소화기 사용 방법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30년을 산 이모(70) 씨는 “눈이 나빠 소화기에 적혀있는 글씨가 안 보인다”고 했다. 오른쪽 손 장애가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최모(66) 씨가 옆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소화기 있어도 못써. 다 보여주기 식”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차라리 ‘꽃병소화기’가 던지기 쉬워서 좋다”고 말했다. 그의 집에 가보니 손바닥 만한 꽃병 소화기가 2개 비치돼 있었다. 물론 초기 화재를 알려줄 경보기나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1년 전 여관 참사를 ‘가까스로 피한 비극’으로 기억했다. 최모(63) 씨는 “여기는 더 열악하니 불 나면 보나마나다. 여기 저기 불 날 때마다 운 좋게 살았네 싶다”고 말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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