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발렌베리 발렌베리 재단 이사장이 재단의 지원으로 ‘우드 사이언스 센터’가 개발한 나무로 만든 플라스틱 대체 소재를 보여주고 있다. 정윤희 기자/yuni@ |
[스톡홀름(스웨덴)=정윤희 기자] “발렌베리 재단의 설립 모토는 스웨덴 발전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스톡홀름 시내 발렌베리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피터 발렌베리 주니어 발렌베리재단 이사장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농담을 하고 소탈한 모습이 스웨덴 굴지의 재벌그룹 발렌베리 가문의 ‘쓰리톱’ 중 한 명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발렌베리 그룹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수익의 80%를 아낌없이 기초과학 투자, 연구자 발굴 및 지원 등에 활용하며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는 그룹이다. 피터 발렌베리 이사장은 발렌베리 가문의 5대째로, 형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터 회장, 사촌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뱅크 회장과 함께 발렌베리 그룹을 이끌고 있다.
피터 발렌베리 이사장은 “가문의 일원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재단이 기금을 운용한다”며 “발렌베리 가문은 각각의 재단과 지주회사, 계열사 등의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 스웨덴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발렌베리 재단이 특히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 “기초과학은 스웨덴 모든 산업의 핵심”이라며 “연구와 교육은 우리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발렌베리 재단은 기초과학, 의료, IT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이 연구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금액만 매년 22억 스웨덴 크로나(약 2700억원)에 달한다.
이러한 연구개발이 상용화한 사례도 많다.
단백질 기반 건강 상품 ‘프로틴 아틀라스’,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인텔리전트 페이퍼’ 등이다. 상용화된 사례는 아니지만 식탁 위에 장식된 장미꽃에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일렉트릭 로즈’도 있다.
피터 발렌베리 이사장은 인터뷰 도중 재단이 지원한 ‘우드(wood) 사이언스센터’의 연구개발 프로젝트 사례를 들며 직접 나무로 만든 새로운 플라스틱 대체 소재를 꺼내들어 기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숲이 많은 스웨덴에서는 과거 제지산업이 크게 발달했으나, 이제는 새로운 플라스틱 대체재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스웨덴에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스웨덴 전체를 발전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발렌베리 재단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치고 있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이달 초 마르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이 16억 스웨덴 크로나(약 2000억원)에 달하는 발렌베리 그룹의 대대적인 AI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피터 발렌베리 이사장은 “AI가 가져올 변화는 매우 크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며 “발렌베리 그룹과 재단의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스웨덴의 다른 기업, 사회, 정치인들이 힘을 합쳐 진지하게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렌베리 재단은 단순히 연구개발에 금전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문화 확산 활동에도 열심이다.
코텐버그, 말뫼, 스톡홀름, 우메오 등 스웨덴 내 4곳에 위치한 어린이를 위한 체험센터가 대표적인 예다. 이밖에도 발렌베리 아카데미를 통해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 있다. 과학문화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회 문제도 관심거리다. 실제 그는 이날 인터뷰에 스웨덴 내 학교 괴롭힘 근절(anti-bullying) 프로젝트의 상징인 ‘Hej’(영어 Hello에 해당) 배지를 달고 나타나기도 했다.
피터 발렌베리 이사장은 “처음에 크누트와 앨리스 부부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깆고 재단을 설립했듯, 발렌베리 재단은 5대째를 넘어 6대째에도 적극적인 사회공헌을 이어갈 것”이라며 “스웨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yuni@heraldcorp.com·[취재지원=한국과학창의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