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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강태은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 멈춤의 용기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시간을 살아 봤는가.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도 도대체 어디를 향해 얼마만큼 도달한 것인지 모르는 시간 말이다.

3년 전, 7월의 이야기를 해 보련다. 인생 16년도 채 살지 않은 아들은 변화된 입시, 학생부종합전형용 맞춤 인재가 되기 위해 철저히 자신의 이력을 쌓아 가던 중이었다. “공부만 잘해서 대학 가는 세상이 아니야.” 위로 반, 두려움 반으로 동아리, 봉사 등 다양한 비교과 스펙을 쌓아 준다는 고등학교를 아들은 스스로 선택했다. 왕복 2시간이 넘는 등하교를 위해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아들의 일과는 비교과 영역과 각종 시험 탓에 여념 없이 분주했다. ‘균형 잡기’에 어려움을 겪으며 ‘성적 하락’이라는 현실의 벽을 겪은 아들은 ‘회복 탄력성’마저 잃어 갔다.

당시 필자는 생애 첫 출간의 꿈을 품고 집필해 온, 기나긴 3년간의 노력이 수차례의 원고 거절로 물거품이 되려던 찰나였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남은 몰라도 난 알아.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거야.”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던 초여름의 어느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뛰고 있던 이 레이싱을 딱 5일만 멈춰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낸 것 없는 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휴식은 무리겠지?”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와 ‘여행을 가면 후회할 최악의 상황’에 대해 함께 적어 봤다. ‘얻을 것이 잃을 것보다 많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아들은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했다. “세상에, 대한민국 고교생이 여름 휴가를”이라는 주변의 반대와 눈치를 끊고 과감히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가족 여행의 3원칙을 정했다. 첫째, 5가지 멈춤이다. 비교 멈춤, 경쟁 멈춤, 정보 멈춤, 해석 멈춤, 불평 멈춤이다. 경쟁하고, 비교하고, 필요치 않은 정보에 생각을 소모하고, 무심코 던진 타인의 한마디를 머릿속에 뱅뱅 돌리며 암호를 해독하듯 시간을 탕진하고, 결국 사람과 상황을 비판하고 마는 숱한 불평에 대한 멈춤이 여행의 1원칙이었다.

둘째, 오감 집중이다. 우리에게는 미각, 청각, 후각, 촉각, 시각이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흩뿌려지는 햇살, 이슬을 머금은 초록잎 향기, 바람과 물결과 새들이 만드는 자연의 협주, 살포시 내 뺨을 노크하는 바람, 혀끝으로 느끼는 자연의 숨결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껴보기다. 과연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이런 호사를 누린 적이 있던가. 여행의 추억을 풍요로운 자산으로 포장해 줄 것이 분명하다.

셋째, 행복한 이기주의 연습이다.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자. 타인의 눈치가 보여 거절할 줄 몰랐다. 남이 뭐라 탓하는 것이 싫어 원치 않는 그곳에 내 몸을 실었다. 몸은 행했으나 마음은 원망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시간들로 많은 인생을 채워왔다.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독(毒)이 나간다’, ‘내면이 말하는 행복의 소리에 솔직히 귀 기울일 수 있을때 남을 위한 소소한 마음의 뜰을 열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5일간의 휴식은 어떤 진통제, 활력 증강제보다 효력이 뛰어났다. “아빠ㆍ엄마의 저런 웃음을 본 적 있어? 소년 같네. 그런데 언제 저렇게 흰머리가 늘었지?” 여행의 마지막 날, 아들은 테이블에 작은 양초를 마련했다. “아빠ㆍ엄마도 그동안 애써 지고 달린 ‘등 뒤의 큰 짐’을 조금씩 내리고 진정으로 아빠ㆍ엄마가 원하는 스스로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늘은 아빠ㆍ엄마가 진짜 아빠ㆍ엄마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첫날이야. 생일 축하해.”

필자는 1년 후 첫 출간의 기쁨을 얻었다. 아들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값있는 재도전을 해 나가는 중이다. 우리는 이 여행을 ‘영혼의 구정물을 씻고 온 여행’이라 말한다. 혹시 해낸 것이 없는가. 지금이 실패라고 여기는가. 지금 당신은 99%에서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모자란 1%가 아닌, 1%를 만들어 낼 도약의 힘이다. 7월, 질주하던 레이싱에서 잠시 벗어나, 멈춤의 용기를 통해 한껏 도약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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