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주말에 집안을 정리하는데 지켜보던 아내가 “돈 빼고는 다 모았네”라고 힐난한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저장 강박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별별 수집품이 다 나온다. 여행 기념품, 미니어처 양주병, 레고 피규어 인형은 그래도 이해가 된다. 누구는 고려청자니 조선백자니 도자기를 모은다는데 음식점의 젓가락 받침대만 수백 개가 나오는 건 도대체 뭐지.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 모은 것인데 혹시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전 세계에서 3초에 한 명씩, 한 시간에 1200명씩 치매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치매에 걸리기 전에 생을 마감하였다. 이제는 100세를 살다보니 인생의 상당 부분을 치매와 함께 살아갈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도 못 알아보고, 행복했던 추억을 하나도 되살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10명 중 4명은 그 전 단계에 있다고 한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예산 2000억 원을 책정하면서 치매국가책임제를 실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장수의 부산물이니 치료 특효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러기에는 본인과 가족의 고통이 너무나 크다.
치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우리 민법도 2013년 7월부터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하였다. 성년후견제도란 질병, 노령 등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렇게 선임된 후견인은 도움이 필요한 피후견인의 재산을 관리하거나 법률행위 대리권이나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다양한 계약 속에서 살아간다. 노년에도 예외는 아니다. 의료, 주거 문제는 물론이고 상속이나 가정사 등 끊임없는 법률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깔끔하게 인생을 정리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온전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치매에 걸린 경우라면 더욱 법률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재산이 없다고 성년후견제도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노인도 친족들이 수급비를 뺏거나, 전 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요양원 등이 서약서만 받고 마음대로 기부 처리하는 일 등이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후견인이 되면 이런 모든 법률문제를 감시하고 방지할 수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금년 2월부터 ‘후견제도지원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체계적인 후견인의 교육과 지원을 하고 있다. 이미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이 치매환자를 위하여 요양보호사를 채용하고, 필요한 경우 병원에 입원시키며, 사망 전후에 따르는 모든 법률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역량을 키우면서 준비하고 있다.
변호사는 당신의 인생 계획과 관계없이 갑자기 치매가 찾아왔을 때 가장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해주는 법률전문가이다.
변호사는 법률지식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쌓인 다양한 간접적인 인생경험이 있다. 간혹 정신이 돌아오는 당신과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다정한 친구이다. 당신이 혹시 노년에 치매로 고통받을 때 이처럼 멋진 친구가 하나쯤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