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물질 짙어지자 실내생활 열풍 -어린이집 안 보내고 홈스쿨링 준비 -마라톤 그만둔 후 홈트레이닝에 집중 -야외 일 포기하고 재택근무 찾아 -전문가 “맹목적 실내활동, 되레 악영향”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어린 아이는 더 안 좋다면서요? 불안해서 못 보내요.”
서울 강북구에 사는 직장인 이세란(36ㆍ여) 씨는 만 2세가 된 아이의 어린이집 등록을 고심 끝에 포기했다. 가장 큰 원인은 아이 건강이다. 봄ㆍ가을은 황사와 미세먼지, 여름은 오존 등 이젠 낯설지도 않은 대기오염물질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한 차원이란 것이다. 이 씨는 학습지를 통한 ‘홈스쿨링’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의 신체활동을 위해 창고도 소형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공간으로 꾸미는중이다. 이 씨는 “아이를 등하교 시간대인 짧은 순간에도 밖에 두는 것이 불안하다”며 “대기질이 계속 나빠지면 일을 멈추고 초등학교 저학년생까지 홈스쿨링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 대기오염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집 밖 생활을 포기하는 시민이 속출하고 있다.
2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미세먼지와 오존 등 대기오염 관련 주의보ㆍ경보를 발령한 수는 2015년 15회, 2016년 39회, 지난해 42회, 올해 1~4월에만 10회 등 해마다 증가세다. 지난 26일에는 올해 첫 오존주의보를 내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교육과 운동을 안방에서 해결하는 것은 물론, 평소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재택근무로 돌아선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김미지(26ㆍ여) 씨는 최근 350여명 규모의 마라톤 동호회를 탈퇴했다.
3년여간 활동을 열심히 해 총무까지 오른 김 씨지만, 야외운동을 하기 힘든 기상상황이 잦아지자 운동 종목을 ‘홈트레이닝’ 등 실내운동으로 바꾼 것이다.
김 씨는 “한 달에 마라톤 대회를 많으면 5~6번은 나갔는데, 예전에는 기록만 신경 썼다면 요즘에는 날씨부터 걱정한다”며 “황사와 미세먼지, 오존 농도가 매년 높아지는데 야외운동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노원구에 사는 직장인 이석균(35) 씨는 최근 중고거래를 통해 테니스 용품을 모두 정리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가족, 친구들과 테니스를 즐기던 이 씨는 “대기오염 주의보와 경보가 서울의 일상이 된 상황”이라며 “이제 어떤 날씨든 할 수 있는 실내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4년째 대형마트에서 창고 정리 일을 하던 조용우(38) 씨는 최근 사표를 내고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곳에 취직했다.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경각심과 앞으로의 불안감 때문이다. 조 씨는 업무 특성상 5~6시간을 밖에서 보냈는데, 온갖 유해성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찝찝함을 떨칠 수 없었다. 숨이 차는 일을 하다보니 마스크도 무용지물이었다.
조 씨는 “열심히 일해도 병원비로 다 나가면 무슨 의미겠느냐”며 “특히 봄과 가을에는 외출을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실내생활 열풍은 이들에게만 제한된 일이 아니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3월1일~4월11일 실내 운동기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 운동 잡화 판매는 10.5% 각각 상승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실내 운동기구는 주로 한 겨울에 판매가 집중되지만, 대기오염으로 인해 그 판세가 바뀌고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와 관련, 무역업체의 임원급 인사는 “직원 건강을 생각한다면 대기질이 최악일 때 재택근무를 하게 해달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맹목적인 실내생활도 건강관리에는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강재헌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실내생활 비중이 늘면 자연스럽게 햇빛을 받을 시간이 줄어드는데, 이럴 경우 비타민D가 부족해져 뼈가 약해지고 골다공증 등 병이 빨리 발생할 수 있다”며 “또,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는만큼 심리적인 위축감으로 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