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ㆍ학부모 등 시험장 찾아 격려…긴장감 역력
-“일주일, 땅이 준 기회라 생각…모두 집중해서 잘봤으면”
[헤럴드경제(포항)=김진원ㆍ김유진 기자]“어, 승빈이 일찍 왔네? 밥 먹었어?” “네, 선생님. 토할 것 같아요.” “준비 잘했으니까 차분하게 보면 된다.”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제철고등학교 앞에서 주황색 패딩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황대일 선생님이 학생들을 맞이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친근했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황 선생님이 격려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황 선생님은 패딩 주머니에서 손가락 두개마디 크기의 자그마한 초코바를 꺼내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로 미뤄진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3일 시작됐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앞에서 황대일 선생님이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뒷편에 위치한 노란색 ‘지진 옥외대피소’ 표시판이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사진=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
황 선생님의 배웅을 받은 신승빈(19) 군은 “지진이 처음 나고 수능이 미뤄졌을 때는 걱정도 많이 하고 멘탈(정신)이 무너졌어요. 그래도 일주일 땅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 열심히 채웠어요”라고 말했다.
오늘 특별히 바라는 게 있는지 묻자 신 군은 “지진이 안 나고 1교시 국어 때 멘탈 안 흔들렸으면 좋겠어요. 지진 나면요? 담임 쌤께서는 감독관 지시 잘 따르라고 하셨어요. 책상 밑에 숨거나 그런 일까진 없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황 선생님이 학생들을 포옹하는 뒷편에 위치한 노란색 ‘지진 옥외대피소’ 표지판이 아침 햇빛에 반짝였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로 미뤄진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3일 시작됐다. 포항 시험지구에서는 12개 고사장, 6098명이 수능을 치른다.
포항고, 포항 장성고, 대동고, 포항여고 등 4개 시험장에 배정된 수험생 2045명은 포항 남구의 포항제철중, 오천고, 포항포은중, 포항 이동중으로 고사장을 옮겨 시험을 봤다. 기존 시험장은 지난 지진의 진앙과 가까워 수험생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랐다.
시험장이 바뀐 경북 포항시 남구 이동중학교 앞에는 인근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응원했다. 장성고 박유나 선생님은 담임을 맡고 있는 7반 학생들이 올 때마다 체크했다. 장 선생님은 “지진 때문에 많이 경황없겠지만 중요한 날이고, 집중해서 잘 치르길 바랄게”라고 했다.
박 선생님은 서지향(19) 양과 부모님을 맞이했다. 박 선생님은 “아이들이 일주일 째 여진 날 때마다 울고 자지러지고 해서 걱정이 많았어요. 고생 많으셨죠. 지향이 아버님. 지향이가 많이 울어서 걱정했는데 나중에 잘 적응하더라고”라고 했다. 서 양 아버지 병진(45) 씨는 “어휴 잠도 못 잤어요. 선생님 고생 많이 하셨어요”라고 했다.
딸을 수험장으로 들여보낸 학부모 이윤서(48) 씨는 “포항 아이들 다들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너무 불안해서 끝이 없을 줄 알았던 그런 시간, 일주일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울먹이며 “오늘이라도 잘 치를 수 있게 무사히 지나길 바란다. 일주일이 1년 같았다. 시험 끝나면 딸이랑 여행 다니자고 했다. 내 딸 효랑아 힘내자”고 말했다.
경북도 수능상황본부는 각 시험장에 소방ㆍ경찰 등 안전요원을 13명씩 배치했다. 소방관 4명, 경찰관 2명, 건축구조 기술자 2명, 전문 상담사 1명, 의사 1명, 수송 담당자 3명 등이다. 포항의 12개 시험장 인근에는 여진 발생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수험생 비상 수송용 버스 244대도 준비했다.
포항교육지원청은 전날 밤부터 예상 시나리오별 매뉴얼을 일일이 재점검하며 지진에 대비했다. 강한 여진 발생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포항교육지원청에서 비상 대기한다.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도 포항에 머물며 안전분야 대응을 지원한다.
이동중학교 고사장 문이 8시 12분에 닫혔다. 8시 14분에 헐레벌떡 뛰어온 수험생이 간신히 고사장에 들어갔다. 현장에 응원 나온 후배 학생들, 선생님들, 교통정리를 돕던 경찰관들이 하나 둘 철수를 준비했다.
23일 오전 포항 이동중학교 앞에서 수험생을 들여보낸 학부모 오금주(45) 씨가 지진이 나지 않길 기도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
오천고등학교에 다니는 함은빈(19) 양 어머니 오금주(45) 씨는 교문 앞에 한참을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자리를 뜨지 못했다. 오 씨는 말했다.
“오늘 지진 안 나고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어요. 발길이 안 떨어지네요. 조금 더 있다가 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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