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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혐오공화국②]그들은 어쩌다 맘충이 됐나…“아이 왜 낳았나 자괴감”
-온라인 ‘맘충’ 도배…외출도 두려운 엄마들
-“아이 얘기만 해도 ‘맘충’ 오해 억울” 한소연
-“갈등 조장 도넘은 논란 줄이고 해법 모색을”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 나는 맘충일까? 두 살배기 아이를 둔 이연숙(34ㆍ여)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이 맘충인지 아닌지 돌아본다. 아이와 외출을 할 때면 모든 행동이 신경 쓰인다. 유모차를 지그재그로 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저귀에서 냄새가 나는지 계속해서 확인한다.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맘충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아이가 식당에서 심하게 울까봐 스마트폰을 쥐어줬더니 아이 건강은 해치면서 편하게 밥 먹는 이기적인 맘충 소리를 들었다. 이제 이 씨는 외출이 두렵다.

최근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들을 뜻하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일부 부모들은 맘충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 단어는 공공장소에서 기저귀를 갈거나, 어린이용 김밥을 만들어달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엄마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온라인상에 경험담을 공유하면서 등장했다. 자기 자식만 생각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이기적인 엄마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얻어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도 “몰상식한 행동은 하지 말자”는 등 자성의 목소리도 생겼다. 

최근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들을 뜻하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일부 부모들은 맘충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제공=헤럴드경제DB]

더 나쁜 맘충 찾기에 집중, 도 넘은 맘충 조롱= 그러나 이제 맘충 논란은 이기적인 엄마에 대한 따끔한 지적을 넘어서는 모양새다. 맘충에 대한 에피소드가 던져지면 ‘그보다 더한 맘충도 봤다’는 더 나쁜 맘충 찾기의 장(場)이 펼쳐지고 있다. 기상천외한 맘충 사례를 공유하며 육아를 웃음거리로 소비하기도 한다. “감당하지 못할 아이를 왜 낳았느냐”는 조롱도 이어진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엄마들은 “이제는 엄마들의 모든 행동에 맘충 딱지가 붙여진다”고 호소한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전업주부 윤모(29ㆍ여)씨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육아 고충에 대해 대화하다가 주위에서 “맘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윤 씨는 “아이와 함께 있던 것도 아니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맘충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며 “온라인 쇼핑 후기를 남기면 집에서 애는 안보고 쇼핑을 하는 맘충이 되고, 유모차를 끌 때 화장이라도 진하게 한 날엔 멋부리는 맘충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일부 부모들은 아이 낳은 것 자체가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한다. 경기도 판교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전모(39ㆍ여)씨는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순간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잘못을 안하면 된다지만 예민한 시선이 느껴질 때면 자꾸만 움츠러든다”고 말했다.

편가르기 조장으로 번지는 꼴…극단적 단어 사용 지양해야 =전문가들은 도 넘은 맘충 논란이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맘충 논란이 엄마와 비엄마와의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구도로 번지고 있다”며 “자꾸 편을 가르면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싸우게 될 수밖에 없다. 맘충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분노와 폭력이 돼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병훈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은 맘충이라는 단어가 가진 힘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강 원장은 “대상에 특정 단어를 붙인 순간부터 그렇게 보겠다고 결정한 것과 같다”며 “사용자들은 일부 이기적인 엄마들에게만 쓰는 단어라고 합리화할 수있겠지만, 맘충을 쓰는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들을 보면 현미경 시선으로 쳐다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로에서 끼어들기 하고 식당에서 노쇼(No show)하는 등 이기적이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들에게 ‘충’을 붙이진 않는다”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만만한데다 상대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쉽게 손가락질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는 맘충 논란을 넘어 사회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조민경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 과장은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공동육아 나눔터처럼 엄마들이 마음껏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육아 인프라 구축하는 등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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