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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적’없이 살아온 65년 세월…
최영수 씨의 기막힌 사연
피란중 집안 반대로 부모 파혼
미혼모 가족으로… ‘姓’만 따라
“마음의 고통 헤아려달라” 호소
법원 “이유있다” 등록정정 허가

‘해주(海州) 최 씨’

최영수(65ㆍ가명) 씨가 마침내 본적을 갖게 됐다. 결혼하지 않은 홀어머니 밑에서 크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얼마 전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 등록부를 떼어 본란에 ‘해주’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감정이 복받쳤다. 본적 없이 살아왔던 65년 세월이 머릿속을 스쳤다.

서울서부지법은 최근 영수 씨가 가족관계등록부 중 특정등록사항의 본란에 ‘해주’를 기록하는 것을 허가했다. 본적 없이 살아온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5월 용기를 내 법원을 찾은 결과다.

영수 씨는 전쟁통에 태어났다. 부모는 6ㆍ25 전쟁 피란길에 인연을 맺었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집안의 반대가 거셌다. 계속된 반대로 두 사람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결국 아버지는 결혼을 거부했다.

어머니는 영수 씨를 낳은 뒤 홀로 출생 신고를 했다. 아버지의 자식이라고 출생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성을 따랐지만, 본적은 끝내 적어내지 못했다. 그 뒤 부모는 이별을 택했고 영수 씨는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본적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아내를 만나 혼인신고도 할 수 있었고, 보험금을 지급받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자녀들의 결혼시기가 다가오면서 영수 씨는 점점 불편해졌다. 영수 씨에게 본적이 없으니 자녀들도 본적을 가질 수 없었다.

‘상견례를 할 때 상대 집안에서 본적을 물어보면 어쩌나’, ‘손주도 본적이 없는 아이로 자라는 걸까’

영수 씨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법률구조공단의 문을 두드렸다. 공단의 도움으로 법원에 “본적을 만들게 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은 영수 씨가 본적만 따로 만들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가족관계 등록부를 정정하는 신청을 내야한다고 보고 사건을 영수 씨의 등록기준지 관할 법원인 서울서부지법으로 이송했다.

영수 씨는 서울서부지법에 ‘해주’를 본적으로 기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시 난관이 나타났다. 법원은 영수 씨에게 족보 사본과 종중이 발행한 본관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영수 씨가 ‘해주 최 씨’라는 것을 입증하라는 취지였다.

영수 씨가 알고 있는 건 ‘아버지는 해주 최 씨였다’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 마디 뿐이었다. 영수 씨는 문건을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법원에 답했다. 본적 없이 살면서 겪었던 마음의 고통을 헤아려달라고 호소했다.

법원은 영수 씨의 호소를 받아들였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7월 영수 씨가 가족관계등록부 중 특정등록사항의 본란에 ‘해주’를 기록하는 것을 허가했다. “이 신청은 그 이유가 있다고 인정된다”라는 재판부의 간단한 표현이 60년 묵은 최 씨의 아픔을 씻어줬다. 
고도예 기자/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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