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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의 안철수] ‘중도 정치’ 6년의 실험…安은 다시 꿈꿀수 있을까
신드롬 타고 정치입문…두 차례 걸친 양보
보선 통해 제도권 진입…상황논리에 ‘무릎’
“일단 야인으로…미완의 정치실험은 계속”

“그동안 현실정치 참여의 기회가 많았는데도 계속 거부 의사를 보였던 것은 ‘한 사람이 바꿀 수 없다’는 일종의 패배의식 때문이었다. 국회의원과 다르게 시장은 바꿀 수 있는 게 많다(2011년 9월)”

“정치인으로 살아온 시간을 뿌리까지 다시 돌아보겠다. 원점에서 제 정치인생을 돌아보며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2017년 7월12일)”

정치인 안철수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말이다. 기존 정치권을 비판하는 ‘청춘 콘서트’로 분위기를 만들어가던 2011년 9월 야인 안철수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출마를 암시하는 말로 본격적인 정치인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17년 7월, 정치인 안철수는 자신이 만든 국민의당이 지난 대선 말미 일으킨 ‘증거 조작’에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 갖겠다”고 밝혔다.

정계은퇴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지만, 사실상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꿀 것으로 보인다. 

▶‘신드롬’으로 화려하게 시작한 정치인 안철수= 안철수의 6년 정치를 관통하는 단어는 ‘중도’였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양쪽 모두를 수렴하며 민생을 위해 달려야 한다는게 안철수의 ‘중도 정치론’이다. 그동안 우리 정치 역사에 간헐적으로 등장했다 사라졌던 특정 지역, 또는 개인 기반 ‘제 3지대’ 정당과는, 나름 차별화를 노렸고, 호응도 받았다.

정치인 안철수의 시작은 일단 ‘성공’으로 평가받았다. 다자 구도 속에서도 5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양보’라는 새로운 정치 언어로 서울시장보다 더 넓은 대선의 문을 열었다.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단어까지 나올 정도였다. 당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의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안철수 신드롬’의 이유로 꼽으며 “보수 대 진보의 격렬한 대립구도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과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가 결합돼 안철수 신드롬이 일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양보는 이듬 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어졌다. 박근혜 후보가 사실상 독주하던 대선판에서 지지율 2위를 달리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제1야당 3위 후보에게 ‘단일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미덕으로 평가받았던 서울시장직 사퇴에 비해, 대선후보 양보를 두고는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의문 부호와 비난도 만만찮았다. ‘친노 386’이라는 노련한 정치꾼들을 등에 업은 문재인 후보와 지리한 기 싸움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세력이 없는 원외 정치인이라는 현실적 한계, 그리고 ‘중도’가 ‘회색분자’로 공격받는 한국 정치의 한계였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무소속으로 기존 정치권 밖에서 정치를 바꾸는데 한계를 느낀 안철수는 2013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제도권 정치에 들어온다. 잘못된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굴 밖에서 불을 지피는 것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직접 들어가 ‘중도 정치’의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이후 안철수는 다시 당시 제1 야당에 대표로 변신한다. 보수 정치세력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중도’의 무게추로 균형을 잡겠다는 계산이였다. 그러나 기존 진보 세력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 편향의 당헌당규를 지우는 일부터 반발에 부딛혔고, 별다른 세력이 없던 그는 당 내 계파 싸움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던진 승부수가 ’국민의당‘ 창당이였다. 진정한 중도 정당을 직접 만들어 자신의 정치 입문 목적을 현실로 보여주겠다는 정치인 안철수의 승부수였다. 그리고 2016년 총선에서 40여 석의 의석을 확보하며 ‘중도 정당’의 가능성과 함께 대선으로 향한 희망도 열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급하게 만들어진 ‘국민의당’은 대부분의 자리가 당시 민주당 이탈 인사로 채워지며 한계에 봉착했다. 중도 세력 구축을 위해 필요한 소위 ‘합리적 보수’를 끌어오지 못했고, 40석의 국민의당은 결국 ‘호남 정당‘이라는 기존 정치 어법의 틀에 갇히고 말았다.

이런 한계는 안철수의 두번 째 대권 도전에서 여실히 한계를 드러냈다. 당시 여권의 분열로 생긴 중도 보수 성향의 바른정당과 연합 시도는 당 내 반발에 수포로 돌아갔고 한 때 1위에 육박했던 그의 대선 주자 지지율도 ‘진보’ 진영의 거센 견제에 3위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서울시장, 대선에서 진보 진영에게 보여준 두 차례의 ‘양보’도 권력 앞에서는 소용 없는 비정한 현실 정치의 단면이다.

▶미완의 정치실험 ‘중도 정치’…철수생각은 계속될까= 정치인 안철수는 결국 자신이 만든 ‘국민의당’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태로 일단 강제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는 마크롱이 안철수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래서 ‘중도 제3 세력’이라는 안철수의 꿈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게 주변의 평가다.

일각에서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국민의당이라는 옷을 벗어던진 안철수가 그간 체득한 경험과 함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긍정론도 나온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와 진보ㆍ영남과 호남이라는 기존 정치 문법 틀 안에서만 왔다갔다 했던 한국 정치 한계성에 대한 공감대가 지난 6년 정치인 안철수와 함께 했던 만큼, 안철수 본인 또는 제2, 제3의 안철수를 통해 ‘중도 정치’의 미완의 정치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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