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지 르피가로 “멜랑숑:프랑스 차베스의 미친 계획”
-포퓰리즘 내세운 르펜과 멜랑숑, 유로존 탈퇴 등 공약 일치
-최고령 후보 멜랑숑, 샌더스처럼 젊은층서 인기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프랑스의 트럼프(르펜)냐 프랑스의 차베스(멜랑숑)냐”
프랑스 대선이 불과 열흘도 남지 않은 가운데 극좌파 후보인 장뤼크 멜랑숑이 급부상하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극우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와 극좌인 멜랑숑이 2차 결선투표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금융시장은 불안에 떨고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르펜과 멜랑숑은 유로존 탈퇴, 부유층ㆍ대기업 증세 등에서 비슷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장뤼크 멜랑숑(왼쪽)과 마린 르펜. [출처=AFP, EPA] |
▶흔들리는 금융시장=당초 오는 23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이후 르펜과 중도신당 에마뉘엘 마크롱이 결선투표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5위에 머물던 멜랑숑이 막판에 3위까지 치고 올라와 선두 후보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에따라 이미 뒤죽박죽이었던 프랑스 대선은 역사상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가 돼버렸다.
멜랑숑은 두차례 대선후보 TV토론을 거치며 신랄한 언변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멜랑숑은 기존 좌파와 우파 정당들이 일자리 창출이나 경기 침체 탈출에 실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표심을 자극했다.
멜랑숑은 부유층 증세, 유럽연합(EU) 내 프랑스 역할에 대한 재협상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르펜에 이어 금융시장에 또다른 골칫거리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자칫하면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시리아, 북한 문제에 이어 극도로 예측 불가능해진 프랑스 대선을 놓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긴장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 격차가 벌어지고, 독일 국채나 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프랑스 극좌파 대선후보 장뤼크 멜랑숑. [출처=AFP] |
ABN암로은행은 투자자들에게 보낸 노트에서 “멜랑숑의 인기 상승은 프랑스 국채에 나쁜 소식”이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투자자들은 유로존을 떠나겠다고 했던 르펜의 부상을 오랫동안 우려해왔다”며 “최근 급부상한 멜랑숑이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 발표된 이포프(IFOP) 여론조사에 따르면 1차투표 지지율은 르펜이 23.5%, 마크롱은 22.5%,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은 19%, 멜랑숑은 18.5%였다. 칸타 소프레스 조사에서는 멜랑숑이 18%로 피용(17%)을 앞질렀고, 르펜과 마크롱이 24%로 같았다.
멜랑숑은 특히 반자본적 성향으로 인해 기업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랑스 경제단체 경영자연맹(MEDEF)의 피에르 가타 회장은 르펜ㆍ멜랑숑의 결선 진출이 “절대적 대참사”가 될 것이라며 “멜랑숑은 베네수엘라 시나리오, 르펜은 아르헨티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민트 파트너스의 채권 중개인인 빌 브레인은 “만일 멜랑숑과 르펜이 2차투표에 오를 경우 유권자들은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보수지인 르피가로는 ‘멜랑숑:프랑스 차베스의 미친 계획’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멜랑숑의 공약이 남미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휴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블룸버그통신도 “멜랑숑은 차베스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우상으로 꼽고 있다”고 전했다.
멜랑숑 지지자들. [출처=AP] |
▶포퓰리즘 공약 르펜과 유사=멜랑숑과 르펜은 이민 정책을 제외하고는 경제, 외교 공약이 크게 다르지 않다.
멜랑숑과 르펜 모두 독일ㆍ미국ㆍ세계화에 반기를 들고 있으며, 프랑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다 은퇴 연령은 62세에서 60세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멜랑숑은 최저 임금 15% 인상 및 사회보장연금을 늘리겠다는 공약도 내세우고 있다. 또, 3만3000유로(약 4000만원) 이상 버는 사람에게는 세율 100%를 부과할 방침이다. 프랑스 최대 민간발전회사 엔지(Engie SA)를 국유화하고, 새로운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중단할 계획이다.
코어-렉젝코드(COE-Rexecode) 경제연구소는 32시간 근무, 60세 은퇴, 부유세 등 멜랑숑의 공약이 이행되면 국가 재정이 5년새 1750억유로(약 210조원)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라이벌인 마크롱은 멜랑숑을 ‘혁명적 공산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크레딧스위스는 “멜랑숑이 대통령이 돼도 의회 다수당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공약 이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멜랑숑은 이민 문제에 있어서는 르펜과 선을 긋고 있다. 멜랑숑은 이민자들에게 드는 비용보다 그들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입장이다. 반면 르펜은 연간 합법 이민자 수를 80% 줄인 1만명으로 축소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프랑스 극우 대선후보 마린 르펜. [출처=AFP] |
▶프랑스의 샌더스?=올해 65세인 멜랑숑은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버니 샌더스처럼 주요 후보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다. 하지만 샌더스와 마찬가지로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IFOP에 따르면 35세 미만 유권자 가운데 마크롱(27%)에 이어 멜랑숑(23%)의 지지율이 높았다.
프랑스의 전체 실업률은 10%지만 청년 실업률은 23%에 달해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젊은층의 불만이 특히 높다.
멜랑숑은 2012년 대선 출마 당시부터 유튜브를 이용해 유권자들과 소통했다. 멜랑숑은 자신의 지지자들이 개발한 온라인 게임 ‘피지컬 컴뱃(Fiscal Kombat)’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해당 게임 속 캐릭터인 멜랑숑은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 등 유명 정치인이나 부자들의 멱살을 쥐고 흔들면서 돈을 번다. 이렇게 번 돈은 평등한 경제를 외치는 그의 공약을 만드는데 쓰이게 된다. 멜랑숑의 상대로는 사르코지뿐만아니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로레알그룹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 마크롱 등도 등장한다.
멜랑숑은 모로코에서 태어나 11살에 프랑스로 건너왔다. 철학을 전공했으며 기자 등 다양한 경험을 거쳐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는 25살에 사회당에 입당했지만 2008년 탈당한 뒤 현재 공산당을 비롯 극좌파 연합을 이끌고 있다. 그는 2012년 대선에 출마해 1차투표에서 11.1%로 4위를 기록했다.
ss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