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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영화X정치]투표, ‘도덕’일까 ‘이해’일까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장기 휴직 뒤 복직을 원하는 회사 동료가 있다. 빈 자리를 이미 다른 인력으로 대체했던 회사는 더 이상의 고용에 난색을 표한다. 회사는 직원들의 투표 결과에 따르기로 한다. 회사는 해당 근로자의 복직 대신 현재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금액의 보너스 추가 지급안을 제시한다. 직원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 투표해야 한다.

‘동료의 복직이냐, 보너스의 추가 지급이냐’.

사람이냐 돈이냐, 그것이 문제다. 언뜻 보면 이것은 양심을 따를 것인가 이익을 따를 것인가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보인다. ‘투표’라는 정치적 행위를 둘러싼 도덕과 이해의 충돌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딜레마

위의 상황은 벨기에 출신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이 연출한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뉴스에서 다룬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어느 한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생산성을 높이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사측에서 약속했는데, 직원 중 한 사람의 실적이 다른 이들에 못 미쳐 전원이 혜택을 잃을 처지가 된다. 그러자 동료들은 실적이 떨어진 근로자를 해고하는데 동의했다는 실화다.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들이 흔히 부딪치는 딜레마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남편과 함께 어린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젊은 기혼 여성이다. 우울증을 겪어 휴직했다가 복직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회사 동료들의 투표에 의해 복직이 무산됐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 간부가 일부 직원들에게 ‘산드라가 복직할 경우 당신이 해고될 수 있다”고 위협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투표를 하게 된다. 재투표에서 회사가 내건 조건은 산드라의 복직 대신 보너스 지급이다.

영화는 월요일 투표를 앞두고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내내 투표권을 가진 직원 16명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동료들의 의사를 묻고 설득하는 산드라의 나흘간을 담았다.

“너의 복직에 투표하겠다”는 말을 선선히 하는 동료가 있는 반면에, 보너스를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유는 뻔하다. 아이들 학자금, 주택 대출금, 집 수리비용 등등. 산드라가 휴직한 동안 채용된 한 계약직 직원은 산드라의 복직시 자신이 해고될 것이 두려워 보너스를 선택했다가 재투표에서 의사를 번복하기로 한다.

복직과 보너스 선택이 반반. 과연 산드라는 복직될 수 있을까. 마지막에 사측은 산드라에 복직을 조건으로 새로운 제안을 한다. 이번엔 산드라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다. 또 다른 딜레마다. 

▶투표, ‘도덕’일까 ‘이해’일까.

마치 저울의 한쪽엔 돈, 곧 자기 이익이 있고 다른 편엔 사람, 즉 동료애나 신의 같은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받게 될 보너스의 액수가 자신이 포기한 양심의 대가, 즉 자신이 가진 ‘도덕’의 값어치같기도 하다. 산드라의 복직에 한표를 던지는 것은 이타적 행위, 보너스 지급을 선택하는 것은 이기적 선택인 듯하다. 동료의 복직이든 내 통장에 꽂힐 보너스든 어느 쪽을 선택하든 모든 동료들이 가질 느낌이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어느 쪽이든 ‘양심’이나 ‘도덕’보다는, ‘이해’에 더 많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도, 주인공도, 공장 직원들이 부딪친 선택의 문제가 도덕이나 양심의 문제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지급 사이에 걸린 각자의 ‘이해’를 담담하게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복직은 산드라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문제이며, 직원들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복직 혹은 보너스에 한 표씩을 보탠다.

여기서 투표가 거의 전적으로 이해에 관한 문제라면, 보너스를 포기하는 대신 동료의 복직을 선택하는 것은 산드라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역지사지’다. 동료의 일자리와 보너스(월급인상)이 서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산드라가 해고되면, 그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모른다. 산드라가 마지막에 스스로 부딪치는 딜레마는 바로 그 점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선거란 무엇일까

영화에서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지급 사이에서의 선택이 결국은 ‘이해’에 따른 것이라면 왜 서로 다른 판단을 하게 될까.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당장, 가시적으로 실현 가능한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이고 비가시적인, 잠재 이익이다.

우리가 흔히 부딪치는 여러 정치ㆍ사회적 갈등도 같은 맥락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해 이해의 충돌이 때로는 집단 전체의 이익과, 일부 또는 개인의 이익과의 충돌로 비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흔히 ‘국익’ 혹은 ‘공익’ 대 개인ㆍ집단의 이익간의 갈등이 그렇다. 이럴 때 사실상은 ‘이해’의 충돌임에도, 어느 한쪽에 의해 ‘양심’과 ‘이익’ 사이의 명분 대결로 매도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님비’ ‘핌피’라고 통칭되는 사례의 상당 부분이 그렇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논쟁이 됐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대표적이다. 많은 이들의 생각이 비슷할 것이다. “‘국익’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해도 우리 동네는 안된다”는 것이 아닐까. 인지상정이다. 이것을 ‘국익’과 ‘사익’의 충돌로 보면, 해결책은 하나다. ‘애국’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양심과 도덕에 호소하는 길이다.

하지만, 문제설정 자체가 틀렸다. 사드 배치는 단지 ‘애국’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선택이라는 점을 정부가 설득했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이르면 4월말 5월초에 치러진다. 다시 ‘선거’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선거는 단지 ‘훌륭한 인물’ ‘멋진 사람’을 선택하는 정치 과정일 수 없다. 개인의 이해와 동떨어진 것으로서의 왜곡된 ‘국익’이나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장도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숙고되고 성찰된 ‘자기 이해’를 엄격하고 철저하게 요구하고 반영하는 정치 행위다. 정직하게 자신의 이해를 주장하는 정치적 행위가 곧 투표이고 선거다.

마지막으로,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숙고되고 성찰된 ‘자기 이해’는 결국 자기 존엄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포일러 때문에 밝힐 수는 없지만, 산드라의 마지막 선택이 그것을 웅변한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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