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추격에 서두를 문제 아냐…원천기술은 단기 완성 없어”

21세기 산업지형에서 한국의 디스플레이산업은 가히 과거 로마제국과 비견된다. 2015년 기준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5.1%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특별기고)‘느림의 미학’ 필요한 소재·부품 R&D

차세대 평판 디스플레이로 부상하고 있는 OLED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욱 놀랍다. TV등에 사용되는 대형 OLED 시장은 LG,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중소형 OLED 시장은 삼성이 독점과 다름없을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 ‘디스플레이강국’ 또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세계 1위의 기술력을 확보하기까지 기업의 끊임없는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세계 1위라는 영예는 수많은 노력이 모여 이뤄낸 결과다.

중국이 디스플레이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R&D예산을 투입해 추격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형 디스플레이(플렉시블, 폴더블 디스플레이) 신기술을 한 발 앞서 선점했다.

디스플레이강국의 힘은 결국 소재·부품산업의 경쟁력에서부터 출발한다. 최근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투명 폴리이미드(PI)소재 개발은 차세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시장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혁신제품을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소재는 곧 신제품으로, 그리고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국가경쟁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소재부품 R&D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는 소재·부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1년부터 부품소재특별법을 제정해 소재·부품산업의 육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10년 한시법 형태로 제정된 특별법을 통해 법 제정 당시 27억달러에 불과했던 소재·부품산업의 무역수지를 2010년 779억달러로 크게 성장시켰다.

이후 산업경쟁력의 핵심원천인 첨단소재는 대일(對日) 무역적자의 원인임을 인식, 특별법을 10년 연장했다. WPM(World Premium Material, 세계 10대 소재)과 SW융합형 20대 부품 등을 선정해 세계 4대 소재·부품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안을 수립,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4년 소재·부품산업의 무역흑자가 1000억달러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50% 이상을 소재·부품이 담당하며 ‘효자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올 상반기 이후 세계적인 경제불황과 저유가, 국제정세 변화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던 소재·부품의 수출량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더불어 중국이 막대한 R&D자금을 투입하면서 한·중 기술격차가 급격히 좁혀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분위기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지, 성과에 대한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리고 있다. 하지만 소재·부품의 밑바탕이 되는 원천기술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꾸준한 연구와 투자, 관심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때 비로소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조급한 마음은 일을 되레 그르칠 수도 있다.

옛말에 “가을 곡식은 재촉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미 다 익은 곡식이므로 서두르지 말고 적기에 수확하면 된다. 정성스레 지은 농사는 잘 익은 곡식으로 보답을 하니, 설익은 곡식을 서둘러 수확하려 하지 말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의 소재·부품 R&D 또한 마찬가지다. 그간 열심히 추진해온 소재·부품 R&D과정을 통해 완성된 많은 성과들처럼 반드시 멋진 성과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설익은 성과를 수확하려는 성급한 마음과 태도를 경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