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가 우리 전통의 소리인 창(唱)과 만났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한태숙 연출의 연극 ‘레이디 맥베스’가 국립국악원과 만나 창극으로 재탄생한 것.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고 마무리하면서 서양 희곡의 대표작인 ‘맥베스’에 판소리, 정가(正歌) 등 한국적 음악이 더해진 공연이 21일부터 열흘간 관객과 만난다.
1998년 초연된 ‘레이디 맥베스’는 서울연극제 작품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이후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대학로예술극장 등 다양한 극장에서 꾸준히 무대를 올렸으며, 폴란드 콘탁 페스티벌 초청, 일본과 싱가포르 등에서도 공연되며 국내외적인 사랑받았다.
‘레이디 맥베스’는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희곡을 맥베스 부인의 관점에서 풀어낸 것으로, 극의 흐름은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권력을 탐한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을 부추겨 왕을 살해하고 왕권을 찬탈하지만, 매일 밤 죄의식과 허상에 시달리다 끝내 파멸한다.
타이틀 롤은 실력파 젊은 소리꾼 정은혜가 맡았다. 한태숙 연출은 “작품의 강렬한 메시지와 함축적 대사가 창과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며 “정은혜가 부르는 레이디 맥베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비감함을 표현함에는 역시 ‘창’과 견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연극에 없는 이 작품만의 특징은 도창(導唱)의 역할이다. 도창은 극 중 때로는 해설자로 때로는 스토리 밖 경계인으로 등장해 드라마를 넘나들며 독특한 존재감을 뽐내는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소속의 염경애 명창이 발탁됐다. 또한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정가 단원 박진희와 중견 연기자 정동환을 비롯해 권겸민, 이형훈 등이 무대에 오른다.
창극으로 탈바꿈하는 만큼, 음악적으로도 한국적 정서를 강화했다. 국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계성원의 곡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이지혜(가야금), 안은경(피리), 황영남(타악)과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신동성이 함께 연주해 묵직한 국악의 맛을 서구 연극 위에 버무려 조화를 이뤄낼 예정이다.
‘세일즈맨의 죽음’ ‘단테의 신곡’ ‘안티고네’ ‘서안화차’ 등 다양한 고전을 무대에 올리며 인간 내면의 어둡고 추악한 면을 파헤쳐온 한태숙 연출은 독특한 무대 미학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레이디 맥베스’에서는 5m 높이의 벽판에 숯을 개어 만든 재료로 무대를 꾸린다.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강렬한 단색화가 배우들이 온몸으로 그리는 선들과 겹치며 극적인 장면으로 구현된다.
무엇보다 권력을 탐닉하다 파멸에 이르는 맥베스 부인의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춘 연극인만큼,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많다.
한 연출은 “ ‘레이디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과도한 탐닉이 가져온 종말, 거기에 대한 사유가 담긴 작품이다. 굳이 세태에 맞춰 대본을 고치려 하지 않았고, 본래 작품 안에 담긴 성찰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맥베스 역의 정동환도 “최근의 상황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맥베스 부인의 권력욕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양심과 욕심을 들여다보게 한다”면서 “욕심을 양심으로 포장해버리는 인간들의 나약한 모습을 반성해보자는 메시지를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학생 이상 관람가. 관람료 3만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