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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행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다른 이가 읽은 책을 받아 읽는 재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 여 년 전에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죽은 자의 사치’를 한 독자가 보내온 적이 있었다. 당시 책이 품절되어, “읽으면서 줄까지 치고 메모까지 남긴 책을 보내줄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는 짧은 편지가 함께 들어 있었는데, 두고두고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책이 되었다.
또 다른 한 권은 지난 연말 폴란드에 머물 때 받은 책이었다. 폴란드는 1989년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체결한 이래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이브의 식탁에 필자를 초대한 가족은 과거 사회주의 시절의 바르샤바 모습도 한국작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 집의 대학생 딸이 예전에 선물로 받았던 책을 다시 필자에게 선물을 했던 것이다. 사진 속의 풍경들도 그렇지만 그 책의 운명과 여정이 소설가의 상상력을 많이 자극했던 것이다.
경기문화재단에 가니, 사람들이 하나 둘 가져다놓은 책들이 탁자 위에 진열되어 있었다. 중고 책들을 중고가게에 내놓거나 작은 도서관에 일괄 기증하는 경우와는 다르게, 자신이 기증한 책 한 권이 다른 이들의 독서를 유발하고, 서평까지 적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온전히 새로운 독서의 여정처럼 보였다. 작가가 책을 출간할 때처럼, 그들도 책을 내놓고 다른 독자의 반응을 기다리게 될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들고 온 한 권의 책을 내놓는 모습은 마치 꺼져가는 독서의 불길을 호호 불며 살려내려는 의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책을 기증한 사람들을 위해, 필자는 최근 출간한 소설 ‘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에 대해 들려주었다. 95%가 카톨릭 신자인 폴란드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다. 폴란드는 가정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식탁에 빈 의자를 하나씩 마련해둔다. 아기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더러운 짐승의 밥그릇에 아기 예수를 뉘게 했던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집집마다 마련된 빈자리는 이제 크리스마스에 갈 곳이 없는 사람을 위한 자리가 되었다. ‘올지도 모를 사람’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강연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타인을 위해 자신의 서재에 한 권 두께의 빈자리를 만들어 두고 나온 이들이 아닌가! 그 생각이 들자, 듬성듬성 강연장의 빈자리도 허전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 사회 곳곳에 필요한 빈자리들을 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