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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염치’를 잊은 사회를 만드는 위정자
대부분 다 알고 있는 염치(廉恥)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은 염치를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직역하면 염(廉)은 검약하고 곧다는 뜻이다. 치(恥)는 파자(破字)하면 귀와 마음이 같이 한다는 뜻이다. 부끄러움을 알면 귀부터 빨개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염치는 오늘날 잊혀져 가는, 아니 가장 지키기 어려운 말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반면 정작 염치를 외면하고 사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 같다.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법이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이라도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자신의 잘못된 행위와 그것이 미치는 해악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고 있다면, 자신으로 인해 비틀린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의 좋지 않은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다른 사람의 나쁜 짓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수오지심은 마음에 내재된 정의감에서 나온다. 결국 정의도 염치와 통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남송의 유학자인 주자(朱子)도 말했다.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으면 능히 하지 않는 바가 있다. 염치를 모르면 또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라고 했다.

주자가 말한 것처럼 염치없는 사람은 제 몸에 묻은 냄새나는 물건은 못 보고, 남의 몸에 묻은 겨를 보며 야단치는 개와 같다. 그런 사람은 남을 해코지하거나 비방해서라도 자신의 처지를 만회해 보려고 한다. 또 없는 말을 지어내서 필요없는 분란을 만든다. 이렇게 못하는 짓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긴 세월을 살았다고 하기에는 아직 부끄러운 나이지만,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이고 양심없는 거짓임에도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주장만을 앞세우는 사람을 볼 때가 꽤 있다.

지난 29일이 그랬다.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지금까지 보아 왔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바로 염치를 잊어버린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줄곧 이야기하는 ‘선의’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는 ‘좋은 뜻’이라는 의미지만, 법률 용어로는 ‘자신의 행위가 법률관계의 발생, 소멸, 그 효력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지난 29일을 포함한 세 차례 담화에서 자신의 과오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모른다고 발뺌만 한 셈이었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염치가 있어야 사회가 유지되며 올바르게 돌아간다고 한다. 그런 마음조차 없는 최고 위정자의 모습에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도 혹 염치라는 덕목을 소홀히 한 채 성인으로 자라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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