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검찰에 의해 피의자로 수사 대상이 된 박근혜 대통령의 ‘전쟁’이다. 21일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3개의 전선을 분명히 했다. 검찰ㆍ특검과는 ‘법리전쟁’이다. 법안을 조목조목 따져 물고 늘어지겠다는 것이다. 야권과는 ‘탄핵전쟁’을 위한 첫 전투로 ‘국회 추천 총리’의 수용 여부를 둔 줄다리기 싸움을 예고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전선으로 모인다. 퇴진ㆍ하야를 요구하는 촛불민심과의 ‘시간전쟁’이다. 국민들은 한달간 4차례에 걸친 대규모 집회를 통해 박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촛불을 끌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했다. 청와대는 “헌법에 정해진 대로 하라”며탄핵절차를 배수진으로 쳤다. 민심이 제풀에 지쳐 꺾일 때까지 버티겠다는 것이다. ▶야권과의 ‘탄핵전쟁’, 그 첫 고지는 ‘총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21일 나란히 탄핵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미 정의당은 ‘하야ㆍ탄핵’으로 의견을 모았다. 야 3당이 박근혜 대통령과 ‘탄핵’의 전면전을 개시한 것이다. 탄핵은 발의(재적의원 과반수)→국회의결(재적의원 3분의2 찬성)→헌법재판소 심판으로 이뤄진다. 발의 및 의결 추진 시점은 이날 현재 정해지지 않았다. 제 5차 대규모 촛불시위가 예정된 26일이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 발의에서 의결까지 1~2개월, 국회에서 헌재까지 최장 6개월이 필요하다. 지난한 장기전이다.
탄핵전쟁에서 첫 전투 ‘고지’는 국무총리 자리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즉각 정지된다. 국무총리가 헌재의 심판까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시키면 대통령의 권한이 복원되고, 탄핵 심판이 이뤄지면 국무총리가 차기 대선까지 관리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면 이를 수용해 임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후 21일까지 상황이 급변했다. 21일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퇴진ㆍ탄핵을 전제로 한 국회 추천 총리는 거부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임명) 제안에 대해서 야당이 계속 거부를 해왔고, 또 여러 주장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런 상황이니까 좀 지켜봐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 제안에 대해…, 야당에서는 좀 다르게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조건이 좀 달라졌으니까 좀 지켜봐야할 것 같다”라고도 했다. “국회 의장 방문시 대통령이 총리권한에 대해 하신 말씀에 입장변화가 없다”고도 부연했다.
야권에서는 탄핵절차 개시에 대비해 먼저 새로운 총리를 인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제기됐고, 여당 비주류 의원까지 가세한 여야 중진 의원 모임에서는 황교안 총리를 대체할 새 총리 후보자 추천을 위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라면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로 탄핵 국면뿐 아니라 차기 대선까지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국면’이 가시화되면서 야권이 새로운 총리 후보자를 추천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황교안 총리 체제를 그대로 두고 가든지, 박 대통령이 내정한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가 통과시키든지 선택지는 둘 뿐이다.
▶檢과는 ‘법리전쟁’…‘피의자 신분 조사’는 중립성 위반? 청와대는 21일 검찰ㆍ특검 수사 등에 대해 “법대로 하자”고 나섰다. 검찰 뿐 아니라 특검 조사도 ‘엄격한 법리싸움’을 하겠다는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미 박 대통령측은 유영하 변호인과 청와대를 통해 검찰 수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20일 유 변호인은 “검찰이 박 대통령을 최씨 등의 공범으로 기재한 부분을 어느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며 “변호인은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 요청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1일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조사는) 특검을 통해서 하고 검찰에 대해서는 피의자 공표 이런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섭섭한게 많고, 정확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엄격히 (대응)한다는 것”이라며 “거기(검찰ㆍ특검조사)에서 죄가 드러나면 죄는 달게 받고 탄핵까지 가야 한다는 그런 큰 흐름에서, 헌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대통령의 법리논쟁 내지는 법리싸움이 진행될 것이다, 변호사하고 특검하고 이런 사이에서…”라고 했다.
유 변호인과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에서 핵심은 두 가지다. ‘피의자로 규정한 검찰 수사는 정치적ㆍ편파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에 응할 수 없다’는 것과 ‘특검 조사는 정치적 중립을 전제로 응하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특검 조사도 ‘정치적 중립성’을 명분으로 거부할 수 있으며, 이 때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판단은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이뤄질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특검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겠다면박 대통령측이 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심 ‘박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vs 朴대통령 ‘촛불이 지쳐 꺼질 때까지’ 청와대는 퇴진ㆍ하야 요구에 대해 단호한 거부 의사를 거듭 밝히며 “차라리 법의 판단을 따르겠다”는 입장으로 차라리탄핵절차에 들어가자는 뜻을 내비쳤다. 여야가 탄핵 절차에 들어간다고 해도 최장 6~8개월이 걸리는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남은 임기를 완수하겠다는 의지다.
결국 퇴진ㆍ하야를 요구하는 민심과는 ‘시간싸움’, 장기전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친박계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는 발언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 내 친박계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난 19일까지 주말 대규모 촛불집회는 총 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주최측 추산과 지하철 이용자 집계 등을 종합하면 지난 12일엔 서울 100만명, 19일엔 전국 100만명이 촛불집회에 나선 것으로 추산된다. 오는 26일엔 또다시 기존 기록을 넘는 대규모 인원이 서울에 집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겨울 추위가 심해지고, 민심과 청와대의 대치국면이 장기화되며, 탄핵국면에 들어선 정치권의 갑론을박이 이어질 경우 국민들의 피로감이 쌓일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를 노리고 역풍까지 불기를 내심 기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어느 쪽이든 국민과 국가엔 ‘최악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