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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방조와 묵인의 카르텔’ 깨야 한다
“이게 국가인가.” 이 말처럼 요즘 현실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최순실ㆍ차은택으로 이어지는 소위 비선실세들이 손대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국가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예산과 장차관 인사에까지 개입한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 ‘갑 중의 갑’ 재벌들도 그들 앞에서는 불쌍한 또 다른 ‘을’에 불과했다. 단순히 정부사업을 따가는 정도를 넘어서 자신들의 인맥으로 국가기관을 장악하고 주도면밀하게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했다. 국가기관이 사실상 그들의 수익모델에 불과했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를 개인적 비리나 퇴행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는 한국 대통령제의 구조적인 문제란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에 의한 권력형 비리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노태우 대통령에서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소통령’이니 ‘해결사’니, ‘만사형통’의 별칭이 한국정치의 퇴행적 상처로 남아 있다. 정도와 성격의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 가족에 의한 불법적인 국정개입은 모든 정부가 피하지 못한 함정이었다. 권력형 비리를 단순히 개인적 비리나 농단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하지 못하는 지속성은 이 문제가 구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권력형 비리를 가능케 한 구조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본질적인 건 내부의 자기검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방조와 묵인의 카르텔이 청와대와 관료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이나 차은택을 몰랐다고 말하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권력을 행사하려면 이들의 존재를 알아야 가능하다. 차은택이 문화계의 황태자라 불렸던 사실 자체가 이미 이들의 권력이 공인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부 폭로에 의해 언론에 노출되기 전까지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들의 비행을 감시해야 할 민정수석이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 집행기관인 문체부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이들이 임명한 장ㆍ차관에 의해 국가정책이 농단되는 상황에서도 그저 복종할 따름이었다. 그 어떤 합리적 문제제기나 제도적 견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위원회는 이들의 비행을 정당화하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는데 충성과 의리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집요한 전통이 중요한 문화적 요인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내부고발을 기피하는 이유도 ‘의리 없는 배반자’란 낙인이 두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할 고통 또한 크다. 대통령에 대한 충언 또한 쉽지 않다. 가족을 끔찍이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가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주권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시스템이 존재하는 건 이런 문화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상호견제와 감시의 자기검열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제도가 견제와 균형에 기반하고 있는 것도 상호감시와 경쟁을 제도화를 통해 개인의 오류나 흠결을 막아내는 데 있다. ‘불신의 제도화’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인 이유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진정한 의미는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대통령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정경유착의 적나라한 현실 또한 국가권력의 임의적 행사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퇴진과 거국내각의 수립이 국정정상화를 위해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개인적 비리나 국정농단을 처단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더 본질적인 과제는 청와대를 비롯한 국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차원에서 대통령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과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다음 대통령에서도 수많은 좌절과 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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