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대한민국 안전을 누가 위협하는가
다시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번엔 치약이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을 불러온 바로 그 유독물질이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치약에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976명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2년 전에도 파라벤이란 발암물질이 치약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유해물질에 대한 안전관리 소홀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판박이다. 무서운 건 수년 동안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식약청의 대응방식도 큰 차이가 없다.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하거나, 해당 물질이 유해하기는 하나 기준치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만 지켜진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국가에 절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일차적 잘못은 역시 유해성분을 사용한 기업에 있다. 하지만, 기업이 탐욕과 무책임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사적 탐욕이 난무하는 시장에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란 공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게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정부의 실패’을 반복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세월호에서 메르스, 가습기 살균제, 치약에 이르기까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건ㆍ사고에서 우리가 기대한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에 이렇게 안이하고 무책임한 정부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더 아이러니한 건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가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다. 기존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도 바꾸면서 안전을 강조했다. 국민의 안전을 염려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대통령의 바람처럼 정부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정부실패의 본질은 ‘통치의 위기’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부는 대통령의 청와대와 장관의 통제를 통해 구체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국민의 안전과 같은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는 건 통치, 즉 국정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치의 위기는 굳이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전 정부에서도 발견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통치의 위기를 해소하고자 훌륭한 대통령을 뽑으면 될 걸로 생각한다. 좋은 대통령이 집권하면 유능한 정부가 탄생할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공무원들이 더욱 유능하고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흔히 이야기하듯 권한과 책임의 명료한 구획,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엄정한 보상과 처벌이 구현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크게 나아질 것이다.

바로 그 핵심에 ‘시민적 통제’가 있다. 정부의 일이 보다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시민적 관여와 개입이 허용된다면, 공무원들의 행태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관료제의 철장(iron cage)’에 몸을 숨긴 채 관할권을 행사하는 일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요구와 바람에 부응하는 보다 ‘민감하고 책임있는’ 정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시민적 통제를 불온시 했던 것은 정부의 관할권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다. 시민의 역량강화는 궁극적으로 국가능력의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패를 차단할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권력집중이 아니라 권력분산이다. 바로 정부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강화하는 일이다. 시민에게 권력을 되돌려 줄 때 국가는 더욱 유능해지고 보다 살만한 곳으로 변해갈 것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