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작가’김수자 ‘마음의 기하학’展 몸·공간과의 관계 푸는 ‘실험적 변화’ 찰흙·촉각 원초적인 만남 통해 재정의 9점의 설치·영상 작품에 주제 압축

찰흙을 만져본 게 언제이던가. 요즘은 초등학생들의 방학 숙제에서도 찰흙빚기 같은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흙이 굳고 갈라지면 행여 깨지고 부서질새라 애면글면하던 어린 마음, 불과 20~30여년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찰흙은 대개 양 손을 이용해 굴리는 행위의 재료로 쓰인다. ‘보따리 작가’로 불리는 김수자(59) 씨는 ‘마음을 빚는’ 행위를 위해 찰흙을 가져왔다. 19m짜리 타원형 나무탁자와 함께. 당분간 미술관을 찾는 많은 이들은 이 테이블에 앉아 유명 미술가의 관객참여형 퍼포먼스에 동참하게 될 예정이다.

찰흙으로 빚어낸…‘변형된’허(虛)의 공간

김수자 작가의 개인전이 27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렸다. 이불, 안규철 작가에 이어 ‘현대차시리즈 2016’ 세번째 작가로 선정된 것.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2014년부터 10년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중진 작가들의 개인전을 지원하는 연례 프로젝트다.

‘마음의 기하학’이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김수자 작가는 찰흙을 이용한 대규모 관객참여 설치ㆍ영상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마음의 기하학’과 ‘구의 궤적’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는 대형 탁자 아래 설치된 스피커에서 가글링(Gargling)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관람객들은 찰흙 덩어리를 동그랗게 빚어 만들고,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영상으로 기록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찰흙으로 빚어낸…‘변형된’허(虛)의 공간

1997년 이스탄불비엔날레,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2015년 구겐하임미술관, 메츠퐁피두센터 등 주요 비엔날레와 미술관 전시에서 보따리, 이불보, 빛과 소리 등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작업 경향을 집약시킨 9점의 설치,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26일 미술관에서 만난 김수자 작가는 찰흙 역시 기존에 보여줬던 보따리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도자기 작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정확히는 도자기가 갖고 있는 ‘허(虛)’의 공간이죠. 우연한 기회에 클레이를 사서 만져보게 됐는데, 흙과 손의 촉각적이고 원초적인 만남에 매료됐어요. 감싸는 행위의 움직임이 보따리를 싸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는 찰흙 빚는 행위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2개의 극점이 만나 중심을 향해 밀려지는 힘”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서 일관된 주제였던 이중성(Duality), 중력의 문제, 신체와 공간의 기하학, 물질의 비물질화 등을 이 재료를 통해 확장시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몸과 공간과의 관계를 기하학적으로 푸는 실험들을 했었는데, 이러한 실험들이 현재에 와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이를테면 ‘변형된 보따리’죠.”

전시장 밖 정원에 설치된 ‘연역적 오브제’ 역시 그가 말한 변형된 보따리의 일환이다. 전통적인 오방색을 이용한 보따리 형상의 조각으로,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지속된 신체와 공간의 기하학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보따리 안에 들어 있는 다른 차원(Dimension)들을 기하학적(Geometry)으로 재정의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미술관과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그리고 올해 초 프랑스 메츠퐁피두센터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필름 설치작업도 이번 전시에 등장했다.

야외 조각이 설치된 정원 사면을 둘러싸고 전시장 복도 유리창을 윈드 디플렉션 패널(Wind-deflecting panel)로 둘러싼 설치작업이다. 보따리의 개념을 빛의 언어로 ‘비물질화’한 작업이자, 회화에 대한 개념을 재정의한 작업이기도 하다. 빛이 분산되는 정도에 따라 물질의 형상이 다채롭게 변화하면서 명상적인 공간이 연출된다. 전시는 내년 2월 5일까지.

김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