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상은 여름 과일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자세히 보니 상점들이 있는 곳은 상가건물이 아닌 아파트 동이다. 아파트 1층을 상가로 불법 개조한 것이다.
이 동은 단지 내 파출소와 주민센터를 마주하고 있다. 주민들은 “불법개조인줄 알지만 누구도 고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철거될 신세여서다. 34년 전 아파트 준공 때 함께 들어선 대중목욕탕도, 지금은 그네와 미끄럼틀만 남은 놀이터도, 상인 180명의 삶터인 상가동 3곳도 모두 5층짜리 124개동의 공동주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달 8일 견본주택을 열고 일반 분양에 나서는 개포주공 3단지에 가림막이 둘러쳐져 있다. [사진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
하루 만에 1억원씩 뛰는 강남권 재건축 열풍의 진앙지 개포 저층 주공 아파트들은 개포동 아파트 매매가(3.3㎡ 당 4330만원)를 전국 최고로 끌어올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1980년대 모습 그대로다. 준공 당시 연탄 아궁이가 있는 집도 6가구나 된다. 1단지 재건축 조합은 공원 부지에 포함된 15동의 일부를 보존, 연탄아궁이를 재현ㆍ전시하는 방안을 강남구청과 협의 중이다.
개포지구는 1980년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라 저층(1ㆍ2ㆍ3ㆍ4ㆍ시영)과 고층(5ㆍ6ㆍ7ㆍ8)으로 나뉘어 개발됐다.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가 서민과 공무원을 위해 양재천 이남의 허허벌판에 지었다.
그 당시 1단지 13평을 분양 받아 1982년에 입주한 뒤 35년째 거주 중인 박종대(67) 1단지입주자대표회장은 분양가를 700만~800만원 사이로 기억했다. 박 회장은 “청약부금을 10만원씩 6회 부은 60만원으로 청약했으며, 내 돈 500만원에다 200만원 가량은 20년 상환의 국민융자를 받았다”고 떠올렸다.
인근 중개소에 따르면 15일 현재 1단지 13평 시세는 9억7000만원이다. 전날 9억5000만원에 4건이 거래되자, 하루 만에 2000만원이 또 올랐다. 지난 5월에는 9억원, 4월에는 8억5000만원, 3월에는 8억1000만원이었다. 가격은 3개월 새 1억5000만원이 올랐다. 34년 전 분양가의 120배다.
다음달 8일 견본주택을 열고 일반 분양에 나서는 개포주공 3단지에 가림막이 둘러쳐져 있다. [사진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
박 회장은 운이 좋은 경우다. 분양세대 90%가 중도에 아파트를 팔고 떠났다. 전체 5040가구 중 분양세대가 보유한 가구는 10%다. 이 가운데 박 회장처럼 34년간 줄곧 한 자리를 지킨 원주민은 4%, 200여명뿐이다. 매매 시세가 1986년에 1600만원, 몇해 뒤 6000만원으로 오르자 주민 상당수가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박 회장은 “이주민의 70~80%는 가격이 올라서 이제는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 온다”며 “떠난 사람들 중에선 아직도 전세살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매매가가 1600만원일 때 전세보증금 1400만원을 끼고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것)를 해 1단지에서만 20채를 사들인 주민도 있다고 했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꿈’이 모여 있던 개포지구는 강남 ‘큰 손’들의 돈잔치 장으로 바뀌었다. 중개소들에 따르면 2개월만에 차익 몇천만원을 쥐기 위해 사고 파는 등 손바뀜이 자주 일어난다. 집주인이 단기간에 계약금 이상으로 가격이 오르자, 이미 맺은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계약금을 되돌려주는 일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개포지구 재건축 1호인 2단지(래미안 블레스티지) 조합원들 사이에선 3.3㎡당 평균 3760만원의 분양가가 너무 쌌던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분양 8일 만에 계약이 모두 끝나서다. 3.3㎡당 4300만원으로 고분양가 논란이 있던 전용 49ㆍ59㎡에도 웃돈 3000만원 가량이 붙었다. 2단지 조합에 따르면 입주 무렵 조합원은 1가구 당 500만~1500만원의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달 8일 견본주택을 여는 3단지 재건축(디 에이치 아너힐즈)는 개포 지구 내 첫 평당 분양가 5000만원 돌파를 눈 앞두고 있다. 호텔 조식 서비스 등 2단지가 고급화 전략으로 차별화에 성공하자, 3단지는 상위1%만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눈높이를 더 높였다.
개포지구 일반분양의 수분양자는 주로 강남ㆍ서초ㆍ송파ㆍ판교ㆍ분당 거주자다. 2단지 조합에 따르면 일반분양 396명 계약자 주소는 강남구가 65%, 서초구 15%, 송파구 10%, 나머지가 성남시였다. 일원현대 재건축인 래미안 루체하임 분양 관계자는 “사전마케팅 조사에서 소형은 20~30대, 중대형은 40~50대의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강남 자산가의 자녀들인 ‘금수저 세대’의 분가 수요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개포지구는 2018년 래미안 블레스티지과 래미안 루체하임, 2019년 디에이치 아너힐즈, 2020년 래미안 포레스트(개포 시영)가 순차적으로 입주한다. 5년 안에 7개 단지 약 1만8700여가구로 탈바꿈한다.
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