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1위 경제대국이 흔들리고 있다. 주력산업의 부진, 신산업 부재에 따른 성장정체 탓이다. 그런데 이 흔들림이 단기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걱정의 소리가 동네 호프집에서도 들려온다. 반면에 터무니 없는 낙관론도 있다. ‘우리가 흔들리는 만큼 남들도 흔들린다’, ‘우리에겐 위기에 강한 DNA가 있다’는 것 등이다. 이 역시 장삼이사들 얘기다.
그럼 전문가들 진단은 어떨까. ‘완만하고도 긴 하강곡선’이니 ‘L자형 침체’로도 설명이 안되자 ‘더블딥’에 ‘멀티딥 불황’이라는 작명까지 나왔다. 그러면서 앞의 동네해법 대신 조건을 달고 있다. ‘내수진작 등 수요확대와 산업 구조조정으로 활력을 회복하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동안 많이 듣던 얘기다. 필요조건, 충분조건 명제정리식 대답.
진짜 해법은 없을까. 대기업의 투자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족치고 어른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규제환경과 유인환경 사이에서 글로벌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일 뿐이다. 신규투자든 보완투자든 자동생산 기반이어서 많은 고용이 필요치도 않다.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시선은 창업과 벤처로 향한다.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액은 2조858억원. 미국의 벤처투자액은 80조원(680억달러)이 넘었다. 이 중 엔젤투자 비중이 26%에 달한다. 국내는 고작 3%다.
넘치는 돈을 더 이상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게 해선 안된다. 임대료, 전세, 토지값 등 사회고정비용 상승으로 우리가 치르는 댓가가 너무 크다. 돈의 흐름을 벤처투자로 돌리면 된다.
창업으로 물꼬를 튼 벤처생태계를 이제 ‘M&A 활성화’로 풀어야 한다. 그래야 창업과 성장이 분업화된다. 연속기업가는 여기서 나온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이는 창업에 몰두하고 기업을 팔아 자본을 회수한 다음 재창업에 뛰어들게 한다. 자본과 시장을 가진 대기업(규모 있는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은 이를 사들여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혁신하고 시장을 확대한다.
벤처투자는 활성화되고 비생산적인 투자, 지대 추구에 열중하는 한국의 자본시장은 산업과 기술로 몰리게 된다. 고질적인 성장동력과 일자리 문제는 드디어 실마리를 찾는다.
치솟는 부동산가격, 지나친 안전자산 추구 경향도 바로잡힌다. 일신상의 안전만 추구하는 사회풍조도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바꿀 수 있다. 돈의 흐름이 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세기말 골드러시와 닷컴러시가 그랬다. 결국 사람, 기술, 자본, 제도 등 그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총체적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지가 관건이다. 개방성과 다양성은 이들 자원효율을 극대화할 것이다.
창업가에게도 요구되는 기본자세가 있다. 먼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좁게는 사회적 편익을 얼마나 증대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제품과 서비스는 곧 가치로 치환되는 시대다. 가치의 개념에는 이제 편익, 효용 뿐만 아니라 사회적 타당성, 정의 등 다소 복잡한 것들까지 들어가버렸다.
시장에 초신성 같은 강력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
- 조문술 산업섹션 재계팀 차장 freihei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