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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표하려 5시간 줄 서” 美 대선 참정권 제한… ‘디도스 공격’은 애교 수준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미국 애리조나에서 대선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열린 지난달 22일. 레슬리 펠드먼 변호사는 투표를 하러 갔다가 진이 다 빠져서 돌아왔다. 투표소인 피닉스 교회 바깥으로 길게 늘어선 투표 행렬이 좀체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3살 난 아이와 12주 된 아기를 안고 갔던 그는 4시간 30여분을 기다려 겨우 교회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서도 투표용지가 없어 30분을 추가로 기다려야 했다.

투표 행렬이 그처럼 길었던 것은 투표 열기가 유달리 뜨거워서가 아니다. 애리조나 주정부가 투표소를 대폭 줄여버렸기 때문이다. 주에서 유권자가 120만명으로 가장 많은 마리코파 카운티의 경우 투표소를 2008년 400개에서 올해 60개로 줄였다. 한 투표소 당 2만명이 몰리는 셈이다. 840만명의 유권자가 있었던 서울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 2248곳의 투표소가 운영돼 한 투표소 당 3700여명이 투표를 한다는 점을 가정하면, 무려 6배에 가까운 것이다. 투표소를 못찾게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하는 한국의 디도스 공격은 애교에 가깝게 보일 정도다.



미국 민주당과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버니 샌더스 캠프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들은 투표권을 침해당했다며 애리조나주를 15일(현지시간) 고소할 예정이다.

소장에서 이들은 “(애리조나는) 놀랍도록 부적절한 투표소 수로 인해 혹독하고 용납할 수 없는 부담이 유권자들에게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많은 유권자들이 긴 줄을 기다릴 수 없어 참정권을 박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열의 유색인종 유권자들이 사는 지역이 백인 거주지보다 투표소가 적거나 아예 없어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참정권 제한 논란은 애리조나주를 넘어서 미국 전역의 문제가 되고 있다.

버니 샌더스 캠프는 지난 3월 오하이오주를 상대로도 17세 젊은 유권자의 참정권을 제한했다며 고소한 바 있고, 버지니아,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담은 고소가 제기돼 있다.

미국에서 이처럼 투표권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지난 2013년 대법원이 ‘투표권법’(voting right act)‘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투표권법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절 각 주별로 흑인들을 투표에서 배제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만든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거나 하는 등의 장벽이 만연하자, 소수인종의 투표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주 정부가 투표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투표규정을 개정할 경우 연방 법무부 또는 워싱턴D.C. 지방법원의 사전허락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이를 사실상 사문화시켜 버렸다.

이번 대선은 그 이후 치러지는 첫 대선이다. WP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무려 17개주가 투표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효할 예정이다. 애리조나주만 하더라도 투표소를 줄인 것 이외에도 최근 부재자를 위한 대리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을 도입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변호사 마크 E. 엘리아스는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공화당이 각 주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광범위한 노력을 목격했다”며 공화당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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