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연령층에서 노인층의 범죄 증가율 최고 높아
-순간적인 분노, 수치심 참지 못하고 범죄로 이어져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 부산에 사는 A(73) 씨는 텔레비전을 교환해 주지 않는 중고가전제품 매장에 앙심을 품고 새벽에 매장에 침입해 불을 질렀다. 준비해간 시너를 바닥과 벽 등에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여 매장 전체를 전소시켜 2000여만원의 피해를 입혔다.
#. 농사를 짓고 있는 B(76) 씨는 강원도 자신의 집 거실에서 동네 주민인 81세 피해자와 술을 마셨다. 사소한 말다툼이 생겼는데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씽크대에 있던 부엌칼을 들고 나와 피해자의 얼굴과 팔 등을 마구 찔렀다. B 씨는 살인미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노인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60대 이상이 저지르는 살인, 방화, 강간, 폭력 같은 강력범죄가 사상 최고 속도로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계층은 노인이다. 61세 이상 범죄자는 2015년(9월 기준) 13만1337건으로 전년 동기대비 9.1% 증가했다. 같은 시기 모든 계층의 범죄 평균 증가속도(3.2%)의 세 배 수준이다.
노인범죄가 폭증하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노인 계층은 지난해 모든 연령 계층 가운데 범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사진은 노인범죄 이미지들. |
노인 범죄는 어느새 10대 청소년 범죄를 앞질렀다. 더 이상 골목길 비행 청소년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노인을 경계해야할 상황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인구 10만명 당 범죄가 61세 이상은 1096.9건으로 10대(776.5건)를 훌쩍 넘어섰다. 2011년만 해도 노인은 813.5건으로 10대(931.5건)보다 범죄를 덜 저질렀었다.
강력범죄(폭력) 건수 기준 2013년 이후 61세 이상은 10대를 앞질렀다. 2013년 노인 강력범죄는 2만2400건으로 사상처음으로 10대(2만1840건)를 앞질렀다. 2014년 61세 이상 강력범죄는 2만4581건으로 더 늘었고, 10대(1만9352건)는 줄어 격차는 더 벌어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일본 전공)는 “일본에서 노인 범죄율이 크게 늘면서 노인 범죄자를 뜻하는 ‘폭주노인(暴走老人)’ 현상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이젠 무서운 10대가 아니라 폭주노인을 더 경계해야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주로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저지르는 사건이 많다.
지난해 11월 C(73) 씨는 전남 고흥에서 선조의 묘 이장 문제로 조카 3명과 다투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승용차에서 엽총을 들고 와 2명을 살해했다. 1심에서 징역 25년형이 선고됐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 6일 고시텔에서 문을 크게 닫는 등 시끄럽게 굴었다며 같은 고시텔 이웃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D(64) 씨를 검거했다. D 씨는 같은 고시텔 거주자인 피해자(48)가 문을 세게 닫는 등 시끄럽게 굴었다는 이유로 언쟁을 벌이다 방에 있던 칼로 목 부위 등을 3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특별한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려 한 노인도 있다. E(72) 씨는 최근 부산의 한 통닭집에서 식당 주인을 죽이려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혼자 남게 된 E 씨는 “중간 술값을 계산하고 남은 금액이 1만5000원입니다”는 주인의 설명에 이유없이 화가 났다. 순간 격분해 주인의 멱살을 잡고 통닭 튀김기계의 뜨거운 기름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밀어 넣으려 하면서 몸싸움을 벌이다 결국 주인에게 2~3도의 화상을 입게 했다.
요즘은 노인이 저질렀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범죄도 자주 눈에 띤다.
F(67) 씨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 이용 촬영), 감금, 협박, 공갈미수 등으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결국 징역 1년형을 확정받았다. 그는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만난 여성(54)과 성관계를 하면서 몰래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리고 이를 남편에게 보여주겠다며 지속적으로 협박하고, 돈을 요구했다. 총 76회에 걸쳐 문자 메시지, 나체사진, 성관계 동영상 캡처 사진 등을 전송해 ‘내 말을 따르라’고 협박했다.
노인 복면강도 사건도 있었다. G(67) 씨는 지난해 10월 오후 복면을 착용하고 부천시 한 단독주택에 “택배 왔다”고 초인종을 눌러 들어간 후, 흉기인 과도로 피해자를 위협해 스마트폰과 신용카드 등이 들어있는 지갑을 빼앗았다. 빼앗은 카드로 총 130만원의 현금을 인출했다.
전영수 교수는 “일본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사회의 어른으로서 경험 많고, 지혜로우며, 보수적인 노인의 이미지가 어느새 이해할 수 없고 폭력적이며 사회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며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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