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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후의 정의사회학] “저는 군인…” “저는 의사입니다”…甲에 맞선 ‘정의’에 열광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맞선 군인
생명의 가치가 최고라 하는 의사
불의에 맞서는 캐릭터에 대리만족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다소 ‘이상적’인 단어가 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크게 인기를 끈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직폭력배 안상구(이병헌)는 정의를 부르짖는 검사에게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라고 비웃는다.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약자들이 돈과 권력을 쥔 강자들을 이기기 힘든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는 관객들은 이 대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거대 갑(甲)의 횡포에도 시민들은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현실이다. 최근 세상을 달구고 있는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 논란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흙수저 인생의 험로 뿐이라는 한탄도 나온다.

최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태양의 후예’에서는 그러나 ‘정의, 그 달달한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태후의 신드롬 배경으로 풀이된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는 군인, 인간의 존엄한 생명과 정의만을 위해 싸우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 드라마의 열풍에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갈망’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같은 해석은 기본적으로 지난 2010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이 불어 일으킨 우리 사회 ‘정의 열풍’과 맥이 닿아있다. 정의라는 가치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정의감을 대리만족 시켜준 것이 이 드라마의 인기 요소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정직함이나 불의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 등이 우리 사회에 결여돼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송중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상사의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지시에 결코 굴하지 않는데, 현재 젊은 세대 청년들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다”고 분석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성과만 급한 사회가 되다보니 상사에 굴종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허탈함을 드라마 속 영웅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서열이 낮은 부하 입장에서는 무조건 따르는 게 관습이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고 참고, 저항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그러나 불의를 참지 않는 캐릭터를 보며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태양의 후예’ 이외에도 최근 종영한 ‘시그널’도 제대로 정의를 다룬 드라마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동안 정의 코드가 드라마 물결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태양의 후예는 정의라는 기준에 따라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등 군인의 상명하복적 부분에서 기존의 군인 코드를 비틀고 있다는 점이 주효한 것 같다”며 “드라마 ‘시그널’ 또한 약자에 대한 착취, 권력의 지배에 종속하게 되는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정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열풍을 일으켰다”고 했다.


드라마를 통한 정의감 대리만족에 우려를 표하는 시각도 물론 존재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 평론가)는 “정의가 잘 실현되지 않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를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에서 기화시키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판타지가 과할 경우 현실과 다른 또 다른 편견의 시작이 될 수 있어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두헌ㆍ유오상ㆍ이은지 기자/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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