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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장 없이도 신상정보 제공…포털이 배상할 책임은 없다”
수사기관 요청으로 한 행위
대법 “네이버 심사의무 없다”


수사기관의 서면요청만 받고 회원의 신상정보 일체를 넘긴 네이버가 해당 회원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수사기관이 영장없이 요청했더라도 네이버가 이에 응한 것은 신속한 수사를 위해 적법하다는 취지다. 최근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된 카카오톡 압수수색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직후여서 향후 포털 회사들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는 10일 차모(36) 씨가 네이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네이버의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012년 서울고등법원은 “포털은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수사기관에 회원 정보를 제공할 지 여부를 충분히 심사할 의무가 있다”고 했지만 이번에 대법원은 “포털이 제공 여부를 자체 심사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포털의 심사의무를 인정하면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私人)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없다”며 “오히려 포털이 자체 심사할 경우 혐의사실이 누설되거나 또다른 사생활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털의 정보제공으로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달성할 수 있는 공익에 비해 제한되는 사익은 해당 이용자의 인적사항에 한정된다”고 덧붙였다. 즉, 기본권 침해로 인한 피해보다 범죄예방과 국민보호 등의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내용 중 ‘전기통신사업자(포털ㆍ이동통신사 등)는 수사기관이 형식적ㆍ절차적 요건을 갖춰 자료 제공을 요청할 경우 원칙적으로 이에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부분에 주목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8월 전기통신사업법 54조 3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이 있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 응할 것인지 여부는 전기통신사업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양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헌재 결정보다 좀 더 나간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표현이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대법원이 타당하다고 하는데 포털이 현실적으로 정보제공을 거부할 수 있겠냐”며 사실상 강제력을 부여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서면요청만으로도 포털이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영장이 없더라도 신속한 수사와 범죄예방을 위해 포털이 수사에 협조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포털이 응하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은 영장을 발부받아 해당 자료를 취득할 수 있다”며 “그러한 업무처리가 원칙이 돼야 한다”고 해 영장주의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양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영장주의를 무력화 혹은 후퇴시킨 것”이라며 “수사기관의 공문이 사실상 판사의 영장을 대신하게 돼 헌법상 영장주의의 적용범위를 줄여버린 결과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은 차씨가 2010년 3월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김연아 선수를 포옹하려다 거부당한 것처럼 보이게 한 이른바 ‘회피 연아’ 동영상을 자신이 활동하는 네이버 카페에 올린 것에서 비롯됐다. 유 전 장관은 동영상 게시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서울 종로경찰서는 네이버에 통신자료 제공요청서를 보내 차씨의 이름과 네이버 아이디,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네이버 가입일자 등의 자료를 넘겨받았다. 유 전 장관은 한달 만에 고소를 취하했지만, 차씨는 네이버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김용규 판사는 지난달 18일 “검찰이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한 카카오톡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며 해당 압수수색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김현일 기자/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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