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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썰전’의 정치학②]오묘한 창과 방패의 ‘사이다’, ‘고구마’ 19대 국회에 길을 제시하다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법안 본회의 통과율 단 36.3%, 총선 60여일 전까지 선거구 획정 불발. 19대 국회는 ‘고구마’ 국회다. ‘여야 지도부 회동, 또 성과없이 마무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볼 때마다 대중의 목은 물 없이 고구마를 삼킨듯 꽉꽉 막혀만 간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정쟁에 느는 건 정치권을 향한 혐오와 불신이다. 대한민국 정치1번지 여의도가 국민에게 선사한 ‘멘붕’이다.

그런데 그 퍽퍽한 고구마 틈을 뚫고 시원한 ‘사이다’ 한모금이 들어왔다. 오랜만의 후련함에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원책 변호사. 한 때 ‘꽃중년’으로 이름을 날리던 손석희 JTBC 사장과 ‘100분토론 트로이카’를 구성했던 역전의 용사들이다. 그런데 100분토론 전성시대는 이미 끝나지 않았나? 다시보니 무대가 ‘케이블’로 바뀌었다.

‘미디어는 메시지’를 넘어 ‘미디어가 마사지(Massageㆍ마셜 맥루한, 신선한 이미지와 메시지가 결합된 뉴미디어가 대중의 촉각까지 자극한다는 이론)’가 된 시대. 진화에 성공한 ‘썰전’ 이야기다.

이처럼 썰전이 대중에게 사이다를 주고, 쟁쟁한 지상파 토론프로그램을 뛰어넘는 ‘최종승자’가 된 데에는 유 전 장관과 전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은 때때로 창과 방패의 역할을 바꿔가며 실타래 처럼 얽힌 현안을 쾌도난마하는 한편, 적절한 유머와 반어법으로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4일 방송된 ‘한국공항공사 연봉의 비밀(152회)’ 편이 대표적인 예다.

JTBC 썰전 방송화면.

당시 방송에서 유 전 장관과 전 변호사는 마치 짠 듯 역할극을 주고 받으며 허술한 공항공사의 인사시스템과 사리사욕만 쫓는 정치권을 한번에 비판했다. 전 변호사가 “제주공항이 한 해 벌어들이는 공항이용료 순수익만 650억원이다. 충분히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라 쏘아붙이면 유 전 장관이 못내 측은한 표정으로 “그런데 거기 사장이 없어 지금”이라는 추임새를 넣는 식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화제는 ‘왜 사장이 없나’로 이어진다. 이번에 반어법이 등장한다.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전 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12월 사임했는데, 연봉이 3억3000만원이다. 장창수 전 국토해양부1차관과 박완수 전 창원시장도 총선 출마를 위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사임했다. 왜 언론이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이들을) 비판 하느냐!”는 전 변호사의 호통이다.

여기에 유 전 정관이 “훌륭한 반어법”이라고 ‘양념’을 치고, 전 변호사가 “네, 결국 공항공사 사장에 아무런 사명감도 없는 사람이 가 있었다는 이야기에요. 아~무런 사명감 없이 노느니 사장이나 하자?”라고 마무리를 하면 훌륭한 요리 하나가 완성된다. “그런데 (그들이) 높은 연봉도 마다하고 굳이 국회의원을 하려는 이유는 애국심 때문이겠죠?”이라는 유 전 장관의 2중 반어법은 상큼한 디저트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콜라보레이션’이 썰전을 왕좌에 올려 놓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색이 각각 뚜렷한 유 전 장관과 전 변호사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환상의 ‘케미’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실제 유 전 장관과 전 변호사는 이념색이 극명히 갈리는 주제에 대해서는 한치도 양보하치 않고 토론에 임한다. 최근 남북관계 경색의 해결책으로 유 전 장관은 ‘대화’를 내놨고, 전 변호사는 ‘강경대응’을 제시했다. 각 진영의 ‘기본원칙’에 대해서는 흔들림 없이 뚜렷한 의견을 개진하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비도덕적ㆍ반인륜적 사안’에 대해서는 공동전선을 만듦으로써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때 자연스럽고 원만하게 이뤄지는 대립과 화합은 오히려 대중들의 ‘카타르시스’를 증폭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모든 사안에 대립으로 일관하는 현 정치권의 고구마와는 다른, 썰전만의 사이다 제조법이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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