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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정적한마디]친비박 모두 물 먹인 원유철의 ‘고단수’ 양비론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시작은 점잖았다. 나무랄 데 없이 정중했고 또 합리적이었다. 중간에는 박근혜 정부를 향한 애정이 덧씌워졌다. 충정이 담뿍 담긴 말은 강직했다. 그러면서도 말미에는 ‘누군가’를 향한 비판을 잊지 않았다. 은근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단 한마디의 말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다. 이보다 더 능수능란한 화법의 고수가 있을까?

3일 정치권을 장식한 결정적 한마디의 주인공은 바로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점잖고도 화려하고, 무미건조하면서도 색이 짙었던 그의 한마디를 그 ‘진의(眞意)’와 관계없이 정치적으로 해부해 봤다. 원 원내대표가 이날 아침 KBS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언급한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아닌 친민으로 가야 한다”는 발언이 그 재료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회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원 원내대표의 전체 발언은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아닌 친민으로 가야 한다. 친민생, 친서민으로 가야 새누리당에 국민이 더 많은 사랑을 줄 것이다. 그래야 20대 총선에서 승리한다. 총선 승리는 곧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고,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성공 아닌가. 당에 계파색이 많이 옅어졌는데 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언행은 삼가야 한다”

우선 주목할 대목은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 아닌 친민으로 가야 한다. 친민생, 친서민으로 가야 새누리당에 국민이 더 많은 사랑 줄 것’이라는 부분이다. 언뜻 보면 아주 원론적이고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충언이다. 이 발언 하나만으로도 원 원내대표는 일반인들에게 ‘합리적 중간자’로 비춰질 수 있게 됐다. 격렬하게 싸우던 양 계파 인물들을 동시에 ‘멍’하게 할 정도다.

그러나 원 원내대표가 친박계 당 지도부로서 평소 김무성 대표와 은근히 날을 세워 온 것을 고려하면 액면 그대로 만을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친민으로 가야) 20대 총선서 승리한다. 총선 승리는 곧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고,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성공 아닌가’라는 부분이다. 집권여당의 ‘친박계’ 원내대표로서 지극히 절절한 총선 승리론이다. 20대 총선에서 비박(非朴)계를 압도해 박근혜 정부 후반기의 레임덕을 방지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친박계의 ‘물갈이론’도 비쳐난다.

특히 이 문구의 진정한 위력은 ‘당에 계파색이 많이 옅어졌는데 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언행은 삼가야 한다’는 문장과 함께 했을 때 드러난다. 원 원내대표가 지목한 ‘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언행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최근 여당 내에서 벌어진 논란을 종합하면 대상은 김 대표 한 사람으로 좁혀진다. 청와대까지 속을 끓게 했던 ‘권력자’ 발언의 진원지다.

결국 원 원내대표는 오늘의 이 ‘결정적 한마디’로 합리성과 박근혜 정부를 향한 애정, 비박계의 경거망동에 대한 비판정신을 겸비한 ‘진실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았을까. 진실은 믿거나 말거나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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