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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일 출국’ 日 상금왕 이보미 “다시,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 “다시,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꿈같은 한 해를 보냈다. 스스로도 “100점 만점에 20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시즌 초 목표했던 상금왕을 넘어서 일본 골프 역사를 새롭게 썼다. ‘스마일퀸’ 이보미(28·마스터스GC). 지난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무려 7승을 거두며 총상금 2억 3049만엔(약 22억 5000만 원)으로 남녀 통틀어 일본 역대 시즌 최다상금 신기록을 세웠다. 일본 골프 최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보미는 시즌 뒤 후원 제의가 물밀듯 밀려오면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모자와 의류에 붙은 스폰서 로고만 합쳐도 족히 30억원은 된다고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귀띔했다. 최근 경기도 수원 이보미스크린골프장에서 만난 그는 “시즌이 끝난 뒤 골프 생각 안하고 실컷 놀았다. 이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이보미는 “작년에도 이곳에서 부족했던 퍼팅을 완성했다. 올해도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좋은 기운을 받아 돌아오겠다”며 활짝 웃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로봇 퍼팅, 딱 2초만 생각해요.”=이전 시즌에 비해 가장 달라진 점을 묻자 주저없이 ‘퍼팅’이라고 했다. 이보미는 2015 시즌 평균퍼트 1위(홀당 평균 1.75개)를 기록했다. 그는 “원래 아이언샷을 가장 좋아하고 자신있어 한다. 그런데 아이언샷을 잘해서 핀에 가까이 붙여도 불안했다. ‘이렇게 짧은데 못넣으면 어쩌지’라는 걱정부터 들었다. 사실 그 짧은 거리에 무슨 라이가 있겠나. 그런데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다가 친 퍼트는 늘 홀을 외면했다”고 돌아봤다. 이보미가 선택한 건 ‘무념무상’. 이보미는 “로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2초 만에 퍼트를 하자고 마음 먹었다.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전에 쳐버리자’고. 그러다 보니 하나씩 들어가고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고 했다. 멘탈도 함께 단단해졌다. 생각대로 샷이 되지 않거나 위기상황이 닥치면 지레 겁먹고 포기했는데, 올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우승을 일구면서 멘탈이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7승 중 가장 의미있는 우승은 5월 호켄노 마도구치 레이디스 대회에서의 시즌 첫승이다. ‘두려움’이라는 껍질을 깼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가 우승했다고 일본팬들이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죠. 저도 모르게 위축된 모습이 보였는지, 대회 개막 전 타이틀스폰서 사장님이 ‘눈치보지 말고 자신있게 하라. 이 대회서 보미가 첫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스폰서라면 일본 선수가 우승하길 바랄텐데…. 정신이 확 들더라고요. 평생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될 거에요.”

[사진=르꼬끄골프]

▶“제 사인이 ‘레어템’이라면서요?”=필드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보미짱, 감바떼(이보미 파이팅)”다. 이보미는 일본인 여자골프 선수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인기와 사랑을 실감하고 있다. 이달 말에는 일본에서 사진집까지 출간된다. 일본에서 여자골프선수가 화보집을 내는건 요코미네 사쿠라 이후 10년 만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보미 인기의 요인으로 실력과 외모 뿐 아니라 완전히 일본 속으로 들어간 자세를 손꼽는다. 이보미는 “운이 좋았다”며 “선배 언니들도 똑같이 해왔는데도 노출이 안된 것뿐이다. 언니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며 겸손해 했다. 최근엔 이보미 사인 품귀현상(?)까지 일어났다. 이보미는 사인 아래에 깃대를 그려넣고 플래그 안에 자신의 한일 통산 승수(현재 22승)를 써넣는다. 그런데 8월 니토리 레이디스(통산 18승)와 11월 이토엔 레이디스(통산 21승) 우승 후 다음주 연승을 하는 바람에 ‘18’과 ‘21’이 쓰여진 사인은 그대로 ‘레어템(귀한 물건이라는 뜻의 신조어)’이 됐다. 이런 사소한 일화까지 아침방송에 자세히 소개될 정도로 이보미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매우 뜨겁다. 이보미는 “어떤 일본팬은 순서대로 사인을 모으고 있는데, 그 두개를 놓쳤다면서 18과 21일 따로 써주면 안되겠냐고도 부탁하더라고요. 재미있으면서도 감사한 일이죠.” 

이보미 사인에 관한 일화를 집중 소개한 일본 아침방송.

▶“작년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까요?”=이보미의 사부곡(思父曲)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이보미가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힘이 된 아버지 이석주씨가 2014년 암으로 작고했고, 이보미는 “일본 상금왕이 돼 달라”는 부친의 유언을 지난시즌 보란듯이 이뤄냈다. ‘아버지’라는 말만 꺼내면 지금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신기하게도 지난시즌 우승할 때마다 전날 밤 꿈에 아빠가 꼭 나오셨어요. 어느 날엔 저랑 같이 우승컵을 들고 계시고, 또 어떤 날엔 ‘나도 보미 우승하는 거 옆에서 보고싶다’며 시무룩해 하시기도 하죠. 아빠가 좋은 곳에서 도와주고 계신 것같아요.”

이보미의 2016년은 지난해보다 더 할일이 많고 어깨도 무거운 시즌이다. 일본에선 ‘소박하게’ 3승을 목표로 했다. 미국 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피레이션과 US여자오픈서 우승에 도전한다. 미국 무대서 검증받고 싶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이보미는 말한다. “작년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했어요. 작년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을 거에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다시, 약속의 땅으로 떠나는 이유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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