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나는 그림을 팔지 않기로 했다. 팔리지가 않으니까 안 팔기로 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안 팔기로 작정했다. 두어 폭 팔아서 구라파 여행을 3년은 할 수 있다든지 한 폭 팔아서 그 흔해 빠진 고급차와 바꿀 수 있다든지 하면야 나도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팔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내 그림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인사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그림을 팔지 않기로 작정한 다음부터는 마음이 편안하다.” (1954년 3월 김환기의 일기 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Where, in What Form, Shall We Meet Again), 16-IV-70 #166, 1970, 코튼에 유채(Oil on Cotton), 232×172㎝ [사진제공=현대화랑] |
고(故)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작품은 현재 한국 미술시장의 최대 블루칩이다. 김 화백은 생전에 ‘어디 미치지 않고서야 내 그림이’라고 말했지만, 작가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 그림 값은 그야말로 ‘미친듯이’ 뛰는 중이다.
지난 10월 5일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1971년 푸른색 점화(‘19-Ⅶ-71 #209’, 253×202㎝)가 3100만홍콩달러(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돼 한국 작가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8년만에 깼다.
가장 최근 열린 K옥션 홍콩경매에서는 1950년대 작품 ‘귀로’가 약 23억5500만원(수수료 포함)에 판매됐고,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는 1970년 점화 작품이 1350만홍콩달러(약 20억1400만원)에 낙찰됐다.
1971년 뉴욕 아뜰리에에서 김환기 화백. [사진제공=현대화랑] |
최근 전세계 미술시장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단색화의 시작을 김환기로 보는 이들도 있다. 수묵의 번짐 효과와 같은 한국적이고 서정적인 정서를 품고 있는 김환기 추상에서 ‘한국적인 미’의 원류를 찾는다.
향후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단순히 한국적인 정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파리, 뉴욕시절을 거치며 서구 미니멀리즘 사조를 융합한 김 화백의 화풍이 서구권 컬렉터들에게도 충분한 소구력을 갖기 있기 때문. 김향안 여사를 비롯한 환기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한국 작가, 김환기의 작품 22점을 볼 수 있는 전시가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12월 4일부터 2016년 1월 10일까지다.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김환기 개인전은 1977년 첫 전시 이후 이번에 11번째다.
지난해 연말 이중섭 전시를 열었던 현대화랑이 올해 연말 또 한번 거장의 작품으로 굵직한 전시회를 마련했다.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 추상미술에 대한 세계적 주목도가 높은 이 시기에 김환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따라서 보통 작품 판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갤러리 전시와는 달리, 이번 전시에 걸린 작품들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화랑 측은 설명했다. 관람료(일반 5000원)도 따로 받는다.
전시는 1974년 마지막 유작인 잿빛 점화(무제, 11-VI-74#206, 코튼에 유채)를 포함, 1960년대 후반부터 작고 직전까지 뉴욕 시기의 작품들을 집중 조명했다. 대부분 개인 소장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국예술연구소 설문에서 예술 분야 전문가 10명이 ‘20세기 한국 대표 예술작품’ 1위에 꼽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도형태 현대화랑 부사장은 “김환기는 단색화에 영향을 준 작가로, 마크 로스코에 버금가는 화업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게 평가받고 있다”며 “앞으로도 김환기 화백을 세계 미술계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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