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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정용덕] 자체 역량 증진엔 관심없는 대한민국 국회
사회과학자들 사이에는 연구주제 면에서 얼마간 분업이 이뤄져 있다. 사회학자들은 결사체나 노동, 사회계층 등 사회구조의 특성과 변화에 관심이 많다. 정치학자들은 정당, 선거, 의회 등 대의민주주의와 투입(Input)정치에 주목한다.

그리고 행정학자들은 투입된 선호를 행정부 내부에서 정책으로 전환시켜 산출(Output)해 내는 현상에 초점을 맞춘다. 이처럼 각 분야별로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하다보면, 그 연구대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친화성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기는 해도 학자들은 자신의 주 연구 대상 분야가 다른 학문의 연구대상 분야와 상호 긴밀하게 견제하고 협력해야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예를들면 행정학자들은 행정관료제의 합리성이 높아지려면 대의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해야한다는 미국 행정학의 아버지 윌슨(Woodrow Wilson)이나 독일 사회학자 베버(Max Weber)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 나아가 대의민주주의의 중심인 의회가 행정관료제와는 정책을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관료제의 기획합리성과 별 차이가 없는 입법부라면 굳이 국가권력을 분리해 국고를 축내가며 따로 둘 이유가 없다.

지난주 언론보도에 의하면, 내년도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 예산안이 상임위를 거쳐 예결특위로 넘어가는데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예정처는 한국행정학보(1991년)에서 김종순 교수가 미국 의회예산처(CBO)를 예로 들면서 필요성을 제안한 지 10여 년 후인 2003년에 신설된, 이제 막 12년이 지난 신생 조직이다.

삼권분립 원리를 바탕으로 18세기 말에 출범한 미국에서 국가예산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의회가 쥐고 있었다. 그 후 무려 1.5세기나 지난 1921년에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점증하는 행정 각부의 예산운영을 대통령도 좀 점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예산국(BOB)이 신설됐다. 애초에는 의회의 반대로 재무부에 설치됐다가 1939년에 이르러 대통령 직속으로 옮겼고, 1970년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에 의해 관리예산처(OMB)로 확대됐다.

이와 같은 행정부의 예산운영 역량증진 시도에 맞서 1975년 입법부가 신설한 것이 의회예산처다. 여기에는 단순히 의회-행정부간의 힘겨루기(power game)를 넘어서는 명분이 존재한다. 의회가 행정부 예산안을 제대로 심의하려면 행정부 제출 예산자료를 넘어서는 자체 논리와 자료의 발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예정처 예산안이 국회 운영위원회 통과에 제동이 걸렸던 배경에는 각 당이 모두 이 기구의 예산분석보고서 내용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예정처의 능력 부족이 원인이라면 인력을 증원하고 연구분석 업 무를 보강하기 위해 예산을 늘려줘야지 오히려 국회가 나서서 삭감할 일은 아니다. 만일 보고서 내용이 여야의 당파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면, 예정처의 역할을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예산과 경제에 대한…‘규범적’ 정책제안이 아닌…독립적이고 엄격히 비당파적이며(strictly nonpartisan)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분석결과를 생산”하는 것이 미 의회예산처의 공식 역할이다.

의회예산처가 살고, 그것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의회도 대 행정부 견제에서 힘을 받을 수 있는 상생(win-win)의 기능 설정이다.

만일 국회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단기적 이익이나 심지어 의원 개인의 지역구 이익 차원에서 예정처를 ‘길들이기’ 하려고 흔들어 댄다면 이는 양자 모두 패자(loser)가 되는 전략이다. 아울러 미국의 회계감사원(GAO)처럼 우리도 국회 역량 보강을 위해 적절한 기회에 감사원을 국회로 이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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