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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푸드] 커피 달고 살던 제가 차(茶)에 저격 당했습니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쇼핑 인생’이다. 나름의 쇼핑노하우가 생겼다면 하나다. 마음에 드는 것은 반드시 그 자리에서 사는 것. 열심히 발품을 팔아 백화점을 돌아 산 옷을 집에 돌아와 입었을 때 갑자기 어느 매장 쇼윈도에서 본 옷이 머릿 속을 스칠 때, 무심코 눈에 들어 산 옷이 내 몸에 꼭 맞을 때 문득 ‘내 것’에 대한 강한 믿음이 생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 넘쳐나는 상품들 중에서도 ‘내 것’이 존재한다. 내게 쇼핑이란 내 것을 찾아나서는 작업의 일종이다. 

먹고 마시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팥빙수라면 사족을 못쓰지만 얼마전 한의원에서 받은 ‘먹어야할 음식/먹지말아야할 음식’이 적힌 종이에는 몸이 찬 본인에게 팥(성질이 차갑다)은 멀리해야 할 식품이라고 적혀있고, 그것을 볼때의 기분이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암튼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단 것을 입에 넣으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다. 찬바람이 불 때는 생강과 배 등을 달여먹는 것 만한 것이 없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있겠지만, 본인의 체질과 당시의 기분, 주변환경에 따라 그 순간 꼭 맞는 먹거리들이 있다. 굳이 비교한다면 꼭 맞는 옷을 찾는 것과 비슷할테다. 잘 맞는 먹거리는 먹고 마시는 순간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

차를 즐길 턱이 없었다. 커피전문점에서 커피가 나오는 시간마저도 영원할 듯 길게 느껴지는 일상이다. 아무렴 차를 우리는 시간이 커피를 손에 드는 시간보다 짧을지언정, 차를 넣고 따뜻한 물을 붓고 차가 우려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괜히 길고 번거롭다. 간혹 차에 대한 기사를 쓰지만 그때마다 늘 노트북 곁을 지키는 것은 차가 아니라 커피였다.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하루와 잘 어울리는 것을 꼽아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커피’라고 대답했을테다.

▶차를 맛보다= “많이 드시고 가세요”.

지난 주말 코엑스에서 열린 ‘2015 명원세계차박람회’에 들렀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부스 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각종 차를 우려낸 티팟(tea pot)들이 테이블에 가득했다. 언뜻 녹차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이는 티팟에는 저마다의 맛과 향을 내는 차들이 분주하게 우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엄지와 집게로 집어마시기 좋은 작은 찻잔에 한 모금의 차들이 쉬지 않고 담겼다. 차를 따르던 부스 담당자가 말했다. “차는 아무리 마셔도 몸에 해가 되지 않아요. 충분히 드시면서 본인에게 맞는 차를 고르시면 돼요”.

하동녹차를 선보이는 부스에서 곱게 한복을 입은 이들이 다기에 녹차를 우려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익숙한 연두빛의 녹차가, 한 쪽에서는 붉은 빛이 감도는 한국식 홍차가 찬찬히 찻잔에 채워졌다. 녹차를 한 모금 들이켰더니 커피로 무뎌진 혀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향을 맡는 순간부터 찻 잔을 잎에 대고 찻물이 혀를 지나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거부감이란 찾아볼 수 없게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어린잎이 품고 있던 연한 향과 맛에 낯선 차를 마주하기 전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녹차가 은은함으로 정리된다면 홍차는 농익은 찻잎의 깊은 맛을 냈다. 영국의 어느 까페, 혹은 그럴듯한 디저트까페에서 마주쳤던 홍차는 우리의 찻잎으로 숙성돼 더욱 한국적인 맛을 담았다.

녹차와 홍차를 지나 전통차, 블렌딩차 등 수십가지 차들이 우려지고 있는 부스 사이를 걸어들어갔다. 자리를 잡는 곳마다 아깝지 않게 찻잔을 채워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흘러나오는 감탄사가 찻 잔을 비우는 매번 터져나왔다. 차라면 다 같은 차라 생각했다. 고소하고, 향긋하고, 달달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이 배어나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차를 마시고 있는 내게 누군가 말했다. “차는 그렇게 많이 마셔봐야해요. 커피도 많이 마시면 어디 원두인지, 어떻게 로스팅 했는지 관심을 갖게 되잖아요. 차도 많이 마시면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야해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내게 꼭 맞는 차(茶)가 있다=수 십잔의 차를 ‘얻어’ 마신 후, 차와 익숙해져보기로 했다. 또 다시 자리를 옮겨 전시장 한켠을 차지 하고 있는 부스에 앉았다. 전통차를 선보이고 있는 업체 ‘쟈드리’다. 가장 먼저 맛을 본 것은 감잎차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마셔도 부담이 없다”는 감잎차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단맛과 고소함이 공존하는 편안한 맛. 그 맛을 내게 한 것은 어떻게 자란 감잎을 언제 수확해서 차로 만들었냐에서부터 시작한다. 직접 사다리를 타고 감나무에 올라가 하나하나 채집한 감잎들이다. 3월말에서 4월 초, 녹차밭 곁에서 유기농으로 자란 감잎의 순을 따서 만든 감잎차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움을 틔운 감잎의 영양성분이 응축돼 있다. 신맛, 떫은 맛은 없고 다만 달고 고소한 맛이 나 자극이 없다.

이어서 맛 본 쑥궁이(쑥차)는 마찬가지로 3월 말에 난 어린 쑥을 사용한다고. 봄의 문턱을 넘을 때 쯤 지천에서 난 쑥을 캐고 있는 할머니들께 쑥을 구입한다고 한다. 쑥이 가진 강한 향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맛 역시 거부감이 없다.

들이키는 한 모금 한 모금이 만족스럽다. 이 것이 나와 맞냐 싶다가도 자꾸만 새로운 맛에 이끌렸다. 쟈드리 이종민 대표에게 좋은 차, 내게 맞는 차를 고르는 법을 물었다. 그는 “먹었을 때 부담감이 없는 것이 본인에게 맞는 차”라고 조언했다. 좋은 재료로 잘 만들어진 차는 목에 걸리지 않고 넘어간다. 목넘김이 좋지 않다면 맞지 않은 차라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향도 중요하다. 이 대표는 “믹스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원두를 사서 갈아마시는 것이 힘들 듯, 티백에 익숙해 차의 기준을 잘 모르는 이들이 좋은 차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며 “차 전문매장 등에 방문해서 샘플을 보고 향을 맡았을 때 마음에 드는 향을 고르는 것도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고르는 방법”이라고 했다.

남은 것은 차의 강함과 연함, 찻잎의 상태를 보는 것이다. 뜨거운 물로 살짝 덮힌 다관에 차를 넣고 흔들면 수분을 살짝 먹은 찻잎이 향을 발산한다. 이 대표는 “향이 기분 좋게하는 향이면 좋은 차고 풋내가 나거나 너무 구수한 향이 나면 덜 익거나 질이 떨어지는 차다”고 했다. 찻 잎이 깨져 있는지, 꼼꼼하게 선별돼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지도 주의깊게 봐야한다. 이 대표는 “잘게 깨져있는 잎이 섞여 있는 차면 선별을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크다. 온전한 잎으로 이뤄져 있다면 그 차의 주인이 꼼꼼하게 선별을 해서 낸 것”이라며 “온전한 잎일 때 차를 진하게 우리면 부드러운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지만 잘게 부서진 잎은 오래 우려버리면 떫은 맛이나 맛을 방해하는 탁한 맛이 같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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