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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왕실-<20> 쿠웨이트]오스만→英→美 줄타기 외교와 ‘상인DNA’로 ‘富의 요새’구축
무력 대신 중립외교 정책 실리 추구
1961년 독립하며 오일머니로 국력 확대

29년 최장기집권 前국왕 경제통 출신
화폐·펀드 설립…개도국 든든한 지원국
現국왕도 나라서 월급 ‘치밀한 왕실경제’



‘한손엔 칼, 다른 한손엔 꾸란’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 정치에서는 무력이 중요하다. 왕실의 권력기반도 종교 또는 종교정신으로 무장한 군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쿠웨이트 왕실은 좀 다르다. 교역과 외교라는 ‘비폭력’ 수단으로 나라를 세웠고, 덩치는 작지만 세계적 부국으로 거듭났다.


▶협상과 외교로 이룬 나라=사바흐 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 국왕(사바흐4세)은 1963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40년간 외교장관을 맡았다. 1991년 이라크 침공을 물리친 것도 당시 국왕이던 자비르 알 아흐마드 알 사바흐(자비르3세)와 외교장관이던 사바흐4세 현 국왕의 외교 노력 덕분이다.

걸프전 이전 쿠웨이트는 친(親) 소련 노선을 걸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이라크를 지지했다. 그런데 이라크가 침공해오자 사우디에 망명정부를 세우면서 미국의 손을 잡았다. 지금은 미군 주둔까지 허용할 정도로 미국과의 사이가 돈독하다.

따지고 보면 이라크 사담 후세인 당시 대통령은 쿠웨이트를 건드렸다 결국 정권까지 잃게 된 셈이다. 반대로 쿠웨이트는 미국을 이용해 숙적 이라크를 제압한 게 된다.

쿠웨이트의 외교력은 왕실 성립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17세기초 포루투칼이 아랍 해상무역을 장악하기 위해 걸프 해안과 오만해협을 따라 전략적 요지를 구축하면서 유럽과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알 사바흐(Al Sabah), 알 칼리파, 알 잘라히마 등 상인가문이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 세 가문은 18세기 초 사우디를 세운 사우드 가문에 밀려 지금의 땅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하지만 영국과 오스만 등 외부세력이 쿠웨이트를 압박하자 세 가문은 1756년 알 사바흐 가문의 사바흐 빈 자비르를 왕으로 옹립하며 왕국을 세운다. 국호는 ‘작은요새’라는 뜻의 쿠웨이트. 하지만 건국 이후 사우디와 갈등하며 알 칼리파와 알 잘라히마 가문 일부는 카타르로 이주해 세력이 약화된다.

온전히 알 사바흐 왕실은 무력 대신 협상으로 영국을 설득해 오스만제국과 인근 아랍 부족들의 침략기도를 견제한다. 영국 입장에서는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가진 알 사바흐 왕실과 협력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압둘라 1세 때인 1835년 영국은 아라비아반도 각 나라들이 서로 공격하는 것을 금지하는 휴전협정을 중재했다.

영국의 힘이 잠시 약해진 19세기 중반 압둘라 2세 때는 잠시 이라크 바스라 주의 한 지방으로 편입돼 오스만제국의 보호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 오스만제국이 쇠퇴하면서 다시 영국의 손을 잡는다. 당시 무바라크 국왕은 바레인이 영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치권을 보장받는 과정을 본받아 1899년 영-쿠 보호조약을 체결, 오스만제국에서 벗어나 자치권을 회복한다. 무바라크 왕은 자치를 위해 영국식 입헌군주제도 받아들인다.

사바흐 4세 현 국왕

▶ 남다른 경제 수완=그래도 역시 상인의 가문이다. 영국과 손을 잡았지만, 이해가 충돌하면 재빨리 입장을 바꿨다. 1938년 미-영 쿠웨이트오일사가 석유를 발견하고,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석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영국의 보호령도 거추장스러워졌다.

1961년 6월 당시 압둘라 3세는 헌법을 제정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선언, 석유이익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사바흐 왕실은 석유로부터 얻은 막대한 부를 안으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데, 밖으로는 외교에 활용하며 국력을 키웠다.

상인의 집안답게 왕실은 부(富)를 관리하는 수완도 남다르다.

1977년부터 2006년까지 독립 이후 최장기 집권하며 오늘날 쿠웨이트의 기반을 다진 자비르3세는 탁월한 ‘경제통’이다. 30대 였던 1962년 새로운 디나르 화폐를 도입하고, 쿠웨이트아랍경제개발펀드(KFAED)를 만든다. 이 펀드는 신흥국들의 경제개발을 돕는 역할을 했다. 도움을 받은 신흥국들은 쿠웨이트로부터 원유를 구매하고 때로는 돈을 빌리는 고객이 되기도 했다. 이들 신흥국이 국제사회에서 쿠웨이트의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왕실의 치밀한 경제관은 원유수입이 대부분인 국가재산을 깐깐하게 관리하는 데서도 엿보인다. 쿠웨이트 예산은 재정부 장관이 편성하고 의회의 승인을 거쳐 집행된다. 일반 공화정 국가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국왕도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다. 급여는 석유매장량과 부동산 자산 및 글로벌 투자 실적에 근거해 책정되며, 현 사바흐4세는 1년에 약 5000만 달러를 받는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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