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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가축도 유권자로 쳐 주시던가”…‘농어촌 지역구 사수’엔 與野 없는 국회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소 10마리, 돼지 20마리, 닭 100마리를 각각 사람 한 명으로 쳐주면 농어촌 인구문제가 해결된다고 누가 그러더라”

지난 1일 오후 국회서 열린 ‘농어촌ㆍ지방 주권 지키기 의원모임’. 한 의원이 던진 농(弄) 섞인 한탄이다. 가축도 유권자로 포함시켜달라는 농담이다. 그렇게라도 지역구를 지키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다.

이날 모임은 농어촌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의 모임이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최대 2배를 넘어선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들 의원은 초비상에 걸렸다. 당장 내년 총선에 지역구가 없어질 위기다.

이날 모임이 눈길을 끈 이유는 또 있다. 구성원의 면면이다. 특수활동비를 비롯, 갖가지 현안으로 고성이 오가는 국회에서 오처럼 여야 의원이 사이좋게(?) 한 테이블에 앉았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물론 이는 국민이 항상 목말라했던 모습이다. 여야를 뛰어넘어 대안을 모색하는 화합의 장. 여야 의원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여명의 여야 의원은 한 목소리로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 훼손’을 우려했다. 인구기준만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면 농어촌의 이익은 누가 대변하느냐는 항변이다. 일견 타당한 목소리다. 수도권 집중화가 한국의 해묵은 난제란 점을 고려해도 그렇다. 이들 의원은 이날 모임을 통해 농어촌ㆍ지방 특별선거구 신설, 자치구ㆍ시ㆍ군 일부분할 범위 확대 적용, 농어촌ㆍ지방 대표자의 선거구 획정위원회 참여 등을 요구했다.

논리는 이해가 되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들 의원이 격론을 펼치면서 갖가지 주장을 쏟아냈다. 한 의원은 “‘게리맨더링’을 시행하더라도 농촌 지역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리맨더링은 중학교에서 배우는 용어다. ‘기형적’으로 선거구를 분할하는 행위를 뜻한다. 정치인이 이권만 쫓다 나오는 부작용으로, 국회의원이 ‘지양’해야 할 대표적 월권으로 배운다. 농어촌 지역구를 지키는 게 중요할 수 있지만, 그 수단으로 게리맨더링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건 그 본심을 혼란케 한다. 농어촌이 중요한 것인지, 농어촌 지역구 의석이 중요한 것인지 말이다.

또 다른 의원은 이미 합의한 의원 정수 문제도 거론하며 의원 정수 증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여야 간 조율을 마친 사항도 모두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원 정수로 논의가 되돌아가면 그렇지 않아도 진전없는 정치개혁은 또다시 공염불이다.

현장에 있던 한 의원은 이 모임을 소개하며 “여기 온 의원은 땅은 많은데 인구가 없어 불쌍한 의원들”이라고 토로했다. 농어촌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농어촌 지역구 의원의 암담함이기도 하다.

농어촌 지역을 지키겠다는 명분이 확고하다면 그 수단도 확고해야 한다. 목적이 옳다고 모든 수단이 옳은 건 아니다. 농어촌을 지키겠다고 게리맨더링하자는 주장으론 국민의 공감을 살 수 없다.

a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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