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만한 아우 없다’는 말은 이제 대학병원가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연세대의료원(세브란스병원), 고려대의료원을 비롯해 가톨릭의대, 인제대백병원, 순천향병원, 한림대병원, 을지대병원 등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본원은 지고, 분원이 도약’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 대학병원들은 본원 외에 대부분 분원(많게는 5~10곳까지)을 두고 있지만 지금까지 ‘본원=최대매출ㆍ최고의 의료진’이라는 인식이 병원내ㆍ외부에도 자연스럽게 인식돼왔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런 공식은 점차 깨지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본원의 매출과 순익은 대부분 하락세를 면치못하고 있고 심지어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탈락하는 일이 속출하는가하면 브랜드 인지도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분원들의 경우는 매출과 순익 그리고 브랜드 인지도에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이런 추세의 가장 상징적인 병원이 서울대병원이다. 서울대병원은 그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병원으로 군림해왔지만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개원한 이후 병상 수와 의료수익ㆍ서비스ㆍ의료인력의 질 측면에서 ‘국내 최고’라는 명성에 조금씩 금이 가면서 점차 힘을 잃어 왔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의 의료수익은 의사성과급제도와 비상경영체제를 통한 긴축재정을 통해 8715억원으로 전년대비 5.3% 증가했지만 전체적으로 의료부문에서 419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정성적인 성장루트를 통한 발전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대병원의 가장 고질적인 병은 아직도 ‘누가 뭐라해도 우리가 최고’라는 구시대적인 자부심이다. 병원장 선임시마다 튀어나오는 권력게임으로 교수들의 줄서기 문화 등이 만연하고 그에 따른 논공행상식 보직인사 등은 병원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적돼왔다. 또 거의 해마다 터지는 노사분규로 인한 파업은 국민 불안감을 키우고있다. 야심차게 건립했던 암병원도 다른 대학병원들의 최첨단의 암센터에 비해 규모나 실적에서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고 인근의 옛 국제협력단 부지에 추진했던 심혈관센터도 노사와의 불협화음으로 불발이 된 바 있다.
이에비해 지난 2003년 개원한 분당서울대병원의 성장세는 예사롭지 않다. 관례적으로 서울대병원 교수가 맡아오던 대통령주치의까지 거머쥐었고 얼마전에는 개원부터 분당서울대병원장을 맡아 키워온 정진엽 전 병원장이 보건복지부 자 장관에 내정되기까지 했다.
외형적인 성장세도 폭발적이다. 지난해 분당서울대병원은 의료수익으로 4936억원을 벌어 전년도 4262억원보다 15% 이상 증가해 5000억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의료수익 증가액은 지난해에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단일병원으로 의료수익이 5000억원을 넘긴 곳은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에 불과하다. 이같은 결과는 지난 2013년 개원한 암ㆍ뇌신경병원의 최첨단 정보기술(IT) 시스템이 입소문을 타면서 암 수술 환자가 특히 많이 늘었고 전체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고 지리적으로도 분당에 위치해 지방환자들이 굳이 복잡한 서울에 오지않고도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잇점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사옥 부지를 인수했고 ‘헬스케어 융ㆍ복합 연구’의 거점을 육성해 헬스케어기업 연구소, 생명과학 대학ㆍ대학원 캠퍼스, 생명과학 연구지원센터, 의료정책 연구센터, 기숙사 등의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본원의 경우 투자나 병원의 규모확대 측면에서 아무래도 대학본부의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분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런 면이 약하고 새롭게 개원하다보니 투자측면에서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있다”며 “또 본원에서 파워게임이나 여러 사정으로 밀려난 교수들이 분원에서 한번 병원을 키워보자는 공동체의식과 도전정신이 강해 현실에 안주한 본원보다는 더 역동적으로 이런 추세를 만든 요인이 되고 있는데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이 이같은 전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분원 전성시대는 서울대병원만의 현상은 아니다. 연세대의료원의 경우 신촌세브란스병원도 성장세가 주춤한 반면 도곡동에 위치한 강남세브란스병원(구 영동세브란스병원)의 브랜드 인지도와 순익은 신촌을 압도할 정도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병원의 매출과 규모, 병상 수에서 비록 신촌에 비해 한참 뒤지지만 강남의 부촌에 입지한 대형종합병원이라는 장점을 살려 순익면에서는 신촌에 우위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병상 등 규모면에서는 국내종합병원 중 약 25위이지만 순익은 5위권안에 드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본원인 고대안암병원이 입지 등의 제약으로 외형적인 성장세가 더딘 반면, 고대 구로병원의 경우 83년 개원당시 300병상으로 시작해 최근 암병원 신축으로 1000병상을 넘겨 대형 상급종합병원으로서의 역량과 위용을 갖췄다. 고대안산병원도 30년전 100병상으로 시작해 830병상으로 덩치가 커지면서 수도권 서남부 대표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가톨릭의료원도 본원이자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여의도성모병원의 브랜드 인지도는 예전 명성이 무색할 정도지만 서울성모병원과 인천성모병원 등 새롭게 부상하는 분원들의 도약이 눈에 띈다. 여의도성모병원의 경우 최근 수백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단행했지만 이미지 상승효과는 미미하다. 지난해에는 상급종합병원에서도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순천향대병원의 경우도 맏형인 서울순천향병원이 지난해 상급종합병원에서 탈락한 반면 순천향대학교부속부천병원이 새롭게 상급종합병원으로 도약했다.
인제대백병원 본원인 서울백병원은 2011년 122억원, 2012년 138억원, 2013년 299억원, 2014년 110억원 등의 적자를 내면서 지난해 폐원까지 검토할 정도로 경영상황이 좋지 못하다. 설상가상 최근 경영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간호사 수를 부풀려 신고하는 방법으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16억원 상당의 보조금을 챙긴 의혹으로 검찰 조사까지 받고 있다. 상계백병원도 지난해 상급종합병원 심사에서 탈락했다. 백병원은 부산에서 부산백병원과 해운대백병원이 그나마 선전하고 있다.
6개 병원을 운영하는 한림대의료원도 지난 2013년 개원한 동탄성심병원이 브랜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가운데 본원인 한강성심병원은 화상전문센터 외에는 타 분야에서 낙후된 이미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태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