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은 몸을 잘 쓰는 배우로, 액션 연기를 많이 선사해왔다. 이번에도 전지현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독립군이 쓰던 모신나강을 가지고 촬영했다. 5kg에 달하는 총을 가지고 뛰고, 구르고, 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저격 자세를 만들어냈다. 안하무인 여배우 천송이로 사랑받은지 얼마 안된 전지현은 이번 안옥윤으로 열풍을 만들어 낼 준비를 마쳤다. 최근 본지는 삼청동 팔판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전지현을 만났다.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까지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은 만주에서 친일파, 일본 군인들을 죽이면서 자라왔다. 독립군의 운명을 짊어지고는 다른 곳에는 관심을 둘 생각조차 못하는 여성. 많지 않은 나이에 그런 임무를 소화하는 안옥윤에게서는 고독함이 진하게 베어나온다. 그런 안옥윤이 하와이피스톨(하정우)를 만나면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이를 연기한 전지현은 하와이피스톨과의 묘한 감정은 사랑이 아닌 연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와이피스톨과의 감정이 연애 감정이란걸 알았을까요? 저는 그런 생각이 막연하게 들더라고요. 사랑이라는 것도 책에서만 보고 이야기만 들었을 것 같아요. 직감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이 사랑인 줄 몰랐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안옥윤에게 더 연민이 갔어요."
일제강점기 시대, 대한민국 역사 중 가장 어두웠던 시기다. 이를 바로 알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독립군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를 바로 알고 있는 젊은 관객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알려진 독립군 조차도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흔적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독립군들은 오죽할까. 전지현 역시 '암살' 촬영 전까지 역사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고.
"사실 역사에 많은 관심은 없었어요. 다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요?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캐릭터도 매력적이라 욕심이 났어요. 안옥윤이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시대 상황을 파악한다거나, 미츠코를 통해서 안옥윤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전지현은 트레이드마크인 긴 생머리를 '암살'을 위해 단발로 잘랐다. 전지현에게는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배우로서 당연한 결정이었다. 머리카락을 자른 이유는 간단했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총을 쏘는 독립군은 없으니까.
"제가 고집하는 스타일이 없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저의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성향은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거나 목숨걸진 않아요. 안옥윤이 긴머리를 찰랑찰랑 거리면서 총을 쏘는 게 상상이 안갔어요. 강인하고 외로운 신념이 가득한 외형으로는 단발머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베를린'에 이어 하정우와 멜로 호흡을 맞췄다. 전지현과 하정우는 영화 속에서 소속 없는 땅에서 엇갈린 선택을 한 남녀. 같은 상황에 처한 서로를 연민한다. 확연히 드러나는 애정신이 없어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베를린' 때도 그랬지만 하정우씨와는 속시원하게 이야기하는 멜로라인이 아니었어요. 드러날 듯 안드러나는 이야기를 하정우씨와 하다보니 애잔한 그런 케미를 많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180억이 투입된 대작이고, 최동훈 감독의 신작, 여기에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캐스팅도 화려하다.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전지현은 그에 따른 기대감도 전했다.
"'도둑들' 때와 '암살' 개봉 시기인 지금과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당연히 '도둑들' 때와 같은 큰 성과를 기대하게 되요. 흥행이 되면 좋겠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암살' 속 안옥윤이라는 캐릭터 만으로도 이야기거리는 풍성하다. 전지현은 안옥윤을 통해 많은 것을 전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깊이감을 살짝 덜어냈다. 배우인 자신과 보는 관객들, 서로를 위한 배려다.
"현장에서 분위기를 많이 느끼고 집에서 감정의 선은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촬영에 들어갑니다. 이번 역할에 있어서 현장에서 많은 고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한 계기가 안옥윤이 80% 나오는데 하고자 하는 많은 이야기와, 그에 따른 표현을 다 하다보면 배우나 관객이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오히려 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볍게 갈 수 있는 부분은 가볍게 가려고 했습니다."
전지현은 데뷔 이후 배우의 이미지보다 스타라는 타이틀이 더 자주 붙었다. '도둑들'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연기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많은 시상식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전지현은 그렇게 보여졌던 시각에 대해 억울해 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스타성이 없는 배우는 경쟁력이 없다고 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명확한 구분이 명확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배우는 아무나 될 수 있는데 스타는 아무나 될 수 없어요. 노력해도 안되는게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선을 긋는 건 벽을 쌓는 기분이더라고요."
전지현은 시나리오를 선정하는 이유로 '재미'를 꼽았다. 배우이기 전에 한 명의 관객으로서 모두가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는 것. 임신 10주차 좋은 소식을 전한 전지현. 당분간 그의 작품을 보기 힘들어지겠지만 엄마가 된 이후는 어떤 배우의 얼굴을 보여줄 지 궁금해진다.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싶다고 생각하고 골라요. 무거운 영화를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며칠 안되거든요. 재미있고 기분 좋은 영화가 보고 싶잖아요. 그런 기준을 두고 작품을 선택합니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