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7월이면 꽃들은 세상 구석구석을 선명한 원색으로 채웁니다. 그중 일부는 원색으로도 모자라 그와 대비를 이루는 색으로 치장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죠. 매년 이맘때면 샛노란 꽃부리를 펼치고 그 내부를 밤색으로 치장하는 기생초는 강렬한 색의 대비로 여름 햇살을 이기는 꽃입니다.
서울시 행당동 살곶이다리 부근에서 촬영한 기생초. 정진영 기자/123@ |
기생초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북아메리카 원산입니다. 본디 관상용으로 들여와 심어서 가꾸던 것이 바깥으로 퍼져 나가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죠. 개망초, 루드베키아 등 북아메리카 원산 귀화 식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기생초 역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그 생명력 덕분에 이방인인 기생초는 매년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전국의 길가를 색으로 수놓는 친숙한 녀석이 됐습니다.
아리따운 기생초의 자태는 이름의 연원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기생초의 기생은 ‘기생(寄生)’이 아니라 ‘기생(妓生)’입니다. 세간에는 꽃의 모양이 조선 말 기생들이 바깥나들이를 갈 때 쓰던 전모(氈帽)를 닮아 기생초란 이름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화장으로 포인트를 준 듯 짙은 밤색으로 물든 꽃부리의 내부가 작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을 겁입니다. 사실 기생이란 말의 어감은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가의 부녀들이 전모를 사용한 예는 없으니 어여쁜 것이 죄라면 죄겠군요. 고운 자태는 온데간데없고 전모만 남은 옛 기생들은 이제 꽃으로 피어나 풍진 세상을 거쳐 사라진 자신들의 역사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한번 같이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죠. 황진이, 이매창, 일지홍 등은 역사에서 이름을 전하는 명기(名妓)들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당대의 사대부들이 탐할 순 있어도 소유할 순 없는 존재들이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명기들 역시 사대부들과 마음을 나눌 순 있어도 온전히 그들의 영역에 속할 순 없었겠죠.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사이 아닌가요? 이 같은 사이를 요즘에 빗대면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생초의 꽃말은 ‘다정다감한 그대의 마음’, ‘추억’, ‘간절한 기쁨’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해보니 기생초의 꽃말이 문득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신경림 시인의 절창 중 하나인 ‘가난한 사랑 노래’는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노래합니다. 반상의 법도가 지엄한 세상이지만 기생도 여자인데 어찌 사랑을 몰랐겠습니까. 자신보다 28살 연상인 시인 유희경(1545~1636)을 깊이 사랑했던 이매창의 연심(戀心)은 시조 한 수로 남아 운명적인 사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나를 생각하는가/천 리에 외로운 꿈만/오락가락 하노라”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